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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맞서 단골집 살린 기적의 '응원 행렬'

중앙일보 2016.08.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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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주년 기념 행사를 연 세서미 도넛의 김진응·제니퍼 김 주인 부부가 밀려드는 고객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에리카 손스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카멜 마운틴 몰 내 한인 부부가 운영하는 ‘세서미 도넛’ 매장에는 지난 2일 개점 27주년을 축하하는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부부는 며칠 전부터 쏟아진 단골들의 예약 주문을 맞추기 위해 거의 밤을 새웠다.

한인부부 운영 17년 도넛 가게 옆
체인점 '크리스피 도넛' 오픈 하자
고객·주민들 몰려 열 배나 더 팔려

그런데 이 날은 새서미 도넛 매장으로부터 불과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선 유명 프랜차이즈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그랜드 오프닝 행사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같은 몰 내 작은 업소들과는 눈에 띄게 구분되는 단독건물에 깔끔한 로고로 단장한 이 매장은 ‘드라이브 스루’ 시설까지 갖췄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은 지난 27년 동안 애환을 함께해 온 이 작은 도넛 가게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개점 축하 행사를 기획했다. 각자 역할을 분담해 음악을 틀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업소 입구에 풍선 장식을 달았다. 이날 세서미 도넛의 한인 부부는 밤 12시까지 끊이지 않는 손님들을 위해 평소보다 열 배나 많은 도넛을 구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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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바깥까지 길게 줄을 선 응원 고객들

과거 개점일을 기념해 본 적이 없는 이 업소에서 주민들이 굳이 왁자지껄하게 기념식을 한 이유는 바로 옆에 들어선 대형 프랜차이즈 업소의 그랜드 오프닝 행사를 초라하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17년 전 업소를 인수해 운영해 온 김진웅(73)·제니퍼(61)씨 부부는 “2년 동안 비어있던 건물이 공사를 하길래 어떤 매장이 들어오나 궁금했는데 한 고객이 그 곳에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들어선다고 귀띔해 줬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고 당시의 심경을 말했다.

주차장을 함께 사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어떻게 이런 상도의가 있을 수 있느냐고 건물주에게 따져보기도 했지만 두 건물의 주인이 달라 법적인 보호도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겠구나 상심하던 이들 부부에게 기적 같은 힘을 실어 준 것은 바로 지역 민들과 단골들이었다.

주민들과 고객들은 이런 일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 없다며 열심히 입소문을 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서미 도넛을 지원하자고 호소했다. 또 아이들은 학교신문을 통해 이런 상황을 알리는데 동참했고 지역 언론들도 이들 부부의 안타까운 사정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후원 동을 적극 보도했다.
 
  
김씨는 “주민들과 고객들은 하나같이 약육강식은 정의롭지 못하다며 로컬 비즈니스를 살리고 소상인을 후원해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고 소리를 높여줬다”며 “단골들 역시 별 일 없느냐면서 전보다 더 자주 찾아오고, 먼 곳에서도 일부러 응원하러 왔다며 용기를 내라고 도넛을 몇 박스씩 사가는 분들도 있다. 덕분에 최근에는 고객이 70%나 더 늘어 전화위복이 됐다”고 감격해 했다.

10년 넘게 매일 아침 이곳에서 커피와 도넛을 즐겨왔다는 프레드 칼로는 “김씨 부부는 고객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다 기억해 올 때마다 진심으로 환영하는 포옹을 해줍니다. 이 가게엔 고객의 취향에 따른 도넛 종류가 42가지나 되지요. 요즘은 아이들을 위해 포켓몬 도넛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커뮤니티와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작은 업소들이 잘 유지되길 바랍니다. 새 비즈니스가 들어서는 것을 싫어할 이유는 없어요. 다만 거리가 너무 가깝지 않나요. 이것은 분명히 상도덕에 어긋나며 소상인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27주년 행사가 열린 날에는 크리스피 크림에서 고용한 경비원들도 몰려든 고객들에게 다가와 "존경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진 작가로 이날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리카 손스는 “열심히 일하는 소상인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주민들 모두가 이 상황에 대해 계속 얘기해 왔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크리스피 크림 도넛의 그랜드 오프닝 날짜에 맞춰 세서미 도넛의 27주년 행사를 더 화려하게 기념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는 보편적 가치와 도덕을 지키기 위해 동네 주민들이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었다"며 "힘들고 어렵지만 이 분들 덕분에 힘이 솟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샌디에이고=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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