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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27> 로열 코펜하겐과 우아한 티타임

중앙일보 2016.08.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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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남아있는 코펜하겐 구시가 풍경.


이럴 줄 알았다. 코펜하겐의 쇼핑가 스트뢰에 거리 아마토르게브르 6번지, 오기 전부터 코펜하겐에서 가장 우아한 장소일 거라 예감했다. 이곳은 덴마크 대표 도자기,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의 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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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에 지은 유서 깊은 건물에 둥지를 튼 로열 코펜하겐 본점.


처음엔 계단 모양 지붕을 왕관처럼 얹고 있는 르네상스풍 벽돌 건물이 어찌나 고색창연한지 그냥 지나칠 뻔했다. 쇼윈도의 로열 코펜하겐 글씨와 왕관과 파도 세 줄이 그려진 로고를 보고서야 멈춰 섰다. 로열 코펜하겐의 상징 왕관은 왕실 도자기를, 파도 세 줄은 덴마크의 해협인 외레순(Øresund)· 그레이트 벨트(Great Belt)· 리틀 벨트(Little Belt)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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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내부는 여자 친구와 마주앉아 티타임을 즐기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1911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아온 본점은 내부도 고풍스럽다. 입구에서부터 여왕의 식탁을 매장에 옮겨놓은 듯 단아한 테이블 세팅이 시선을 끌었다. 그릇과 잘 어울리는 꽃이 생기를 더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갤러리 같은 공간이 2층까지 이어졌다. 하얀 자기를 캔버스 삼아 맑은 청색 꽃을 그려 넣은 잔이나 접시를 조심스레 살펴보는 이들의 눈에는 동경이 깃들어 있었다.   

로열 코펜하겐의 역사는 1771년 경 화학자 프란츠 하인리히 뮐러(Frantz Heinrich Miller)가 덴마크의 진흙으로 도자기 만들기에 성공하며 시작됐다. 1775년엔 율리아네 마리(Juliane Marie, 1729~1796) 왕비의 지원을 받아 코펜하겐에 도자기 제작소를 세웠다. 1779년에는 왕비의 양 아들, 크리스티안 7세 왕의 지원까지 받으며 왕실 도자기로 등극했다. 이때부터 ‘로열’이란 칭호를 훈장처럼 달고 덴마크 왕실에서 쓸 식기와 선물용 도자기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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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코펜하겐 블루 푸르티드 메가 찻잔에 담긴 향긋한 홍차.


당시 유럽에서는 중국에서 들여온 청화백자가 유행이었다. 로열 코펜하겐도 처음엔 청화백자를 따라 만들다, 점점 고유의 색을 찾았다. 비법은 이렇다. 자기의 색이 탁하지 않고 투명한 흰색을 띠도록 1400도의 고온에서 굽는다. 여기에 초벌구이한 도자기에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린 뒤 다시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를 하는 ‘언더 글레이즈드(Under glazed)' 기법을 더해 푸른 수채화 같은 도자기를 만들어낸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손으로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는 언더 글레이즈드 기법을 고수한다. 

그렇게 탄생한 청초하고 잔잔한 ‘블루 플루티드(Blue Fluted)' 패턴은 로열 코펜하겐의 상징이다. 전통적인 패턴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별 감각에 맞춘 디자인을 선보이며 가치를 드높여 왔다. 특히, 2000년엔 블루 플투티드의 잔 꽃무늬를 과감하게 확대한 ’블루 플루티드 메가(Blue Fluted Mega)'를 선보이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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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스무시 카페의 스타 메뉴, 스무시


블루 플루티드 시리즈를 한참 바라보다 보니 잔의 촉감을 느끼고 싶어 졌다. 그래서 안뜰의 ‘로열 스무시 카페(Royal Smushi Cafe)’로 향했다. 로열 스무시 카페에선 로열 코펜하겐 잔에 차 한잔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향긋한 홍차에 셰프가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스무시’를 곁들여도 좋다. 스무시란 빵 위에 햄, 야채 등을 얹어 먹는 덴마크식 오픈 샌드위치, ‘스머르브로드(Smorrebord)’에 일본의 스시(Sushi)를 접목시킨 퓨전 메뉴다. 앙증맞은 모양과 한 입에 쏙 먹기 좋아 인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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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코펜하겐 본점 안뜰에는 로열 스무시 카페가 있다.


카페는 매장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매장이 오리지널 ‘블루 플루티드’ 처럼 우아하다면, 카페는 ‘블루 플루티드 메가’처럼 모던했다. 핑크색 벽, 하얀 대리석 테이블, 앤트 체어(Ant Chair,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앤트체어 잘록한 개미허리를 닮아 앤드 체어라 불림)의 조합이 로맨틱했다.

홍차를 주문하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도 지루하지 않았다.  종업원이 ‘블루 플루티드 메가’ 잔에 담긴 차를 테이블에 살포시 내려놓자, 찻잔이 향기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진하게 우린 ‘퀸스 블렌드(Queens Belnd)’에서 상큼한 오렌지와 베르가롯향이 그윽하게 피어올랐다.

설레는 맘으로 찻잔 손잡이를 잡고 잔에 입술을 댔다. 향기로운 차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을 느끼며 차를 조금씩 음미했다. 예쁜 찻잔 너머 친구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느껴졌다. 찻잔과 받침접시가 땡그랑 부딪히는 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렸다. 어느새 나는 머릿속에서 시계를 지워버리고, 소곤소곤 친구와, 또 차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이 맛에 티타임을 즐기는 구나 싶었다. 열 그릇 부럽지 않은 단 하나의 찻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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