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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철거해야 10억엔 지원? 일본 우익 주장일 뿐

중앙일보 2016.08.03 01:31 종합 10면 지면보기
한·일 간 ‘12·28 위안부 합의’에 따라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이 출범(지난달 28일)한 이후 일본 측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재단에 출연하기로 한 10억 엔(약 107억원)과 관련해 당초 합의 취지와 다른 목소리들이 나와 정부도 경계하고 있다.

위안부 출연금 안 내면 합의 파기
자금 용도는 재단 이사회가 결정
일본 정부 관여할 여지 거의 없어

대표적인 게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10억 엔을 연계시키려는 시도다.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자민당 정조회장은 지난달 31일 “소녀상 철거가 합의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이나다 회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최초의 여성 총리감으로 꼽는 최측근이다.

하지만 12·28 합의에서 한국 정부는 소녀상과 관련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만 했다. 철거나 이전 등의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1월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밝힌 이후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10억 엔을 어디에 쓸지를 두고도 잡음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28일 “아베 총리가 ‘용도가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니 면 돈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2·28 합의는 ‘한국이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자금을 거출한다’고 했지, 10억 엔의 용도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소녀상과 연계하거나 용도를 문제 삼아 일본이 10억 엔을 내지 않을 경우 이는 합의 파기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재단 사업에 일본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12·28 합의에는 ‘양국 정부가 협력해 (재단) 사업을 행한다’고 돼 있다. 양국 정부가 큰 틀을 협의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의견을 개진할 순 있지만 구체적 계획은 재단 이사회가 의결하도록 돼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사업 시행에 있어 일본 정부가 관여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재단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방침이다.

김태현 재단 이사장은 재단 발족 당시 기자회견에서 “10억 엔은 피해자 맞춤형 지원에 쓸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10억 엔은 대부분 의료지원비·생계지원비 등 피해자들의 희망에 따른 직접 지원금과 추모사업비로 쓰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교도통신은 지난달 31일 복수의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10억 엔이 배상금이 아니라는 인식을 확인하기로 했다”고도 보도했다. 하지만 12·28 합의의 배경을 감안하면 양국이 10억 엔의 성격에 대해 배상금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결론짓기는 힘들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일본 정부는 ‘위로금’이나 ‘보상금’으로 표현하자고 주장하고, 한국은 ‘국가의 법적 책임 인정에 따른 배상금’이어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에서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선 게 12·28 합의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형사 배상금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자금을 대는 것은 ‘사실상 배상금’이라는 것이 한국 외교부의 해석이다.

재단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일부 우익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지만 이미 일본은 자금 거출을 확정한 것으로 안다. 파기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양국은 다음주 서울에서 국장급 협의를 통해 10억 엔 거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국장급 협의에서 재단 사업의 방향과 일본 측의 출연금 거출 시기 등에 대해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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