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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자 든 38세 여경 “제복 제작 명 받았습니다”

중앙일보 2016.08.03 00:32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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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순경은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제복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 임현동 기자]

서울 강남경찰서 정보화장비계에서 근무하는 이은주(38) 순경은 동료들 사이에서 늘 ‘자’를 가지고 다니는걸로 유명하다. 그는 동료들의 제복 치수를 재고는 “소매를 한 2㎝만 줄이면 활동하기 편하겠다” 같은 조언을 해준다.

‘디자이너 경찰 1호’ 이은주 순경
베네통 코리아, 신세계서 10년 근무
남 돕는 일 하고 싶어 늦깎이 지원
체력시험 걱정에 매일 2시간 달려
“범죄 현장 처음 갔을 땐 겁 덜컥나”

이 순경은 국내 최초의 ‘디자이너 경찰’이다. 지난해 진행된 경찰의 ‘소재·디자인 개발 특별채용’을 통해 제복을 입었다. 앞서 2014년 해당 특채가 처음 도입됐지만 당시엔 합격자가 없었다.

경찰의 눈높이에서 제복과 벨트, 신발, 모자 등의 소재를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게 그의 업무다. 물론 순찰, 현장 출동과 같은 일반 업무도 함께 담당한다.

30대 후반의 늦깎이로 경찰에 입문하기 전까지 그는 10년 넘게 ‘베네통 코리아’ ‘신세계인터내셔날’과 같은 유명 의류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대구카톨릭대 섬유공예과 출신의 미혼인 이 순경은 “왜 경찰이 됐느냐”는 질문에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그는 “제 일을 할 때보다 주변 사람들을 도울 때 더 행복했어요. 이런 저를 보고 경찰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가 ‘소재·디자인 경찰 채용 공고가 떴는데 네게 딱 맞는 일 같다’고 알려줬어요. ‘경찰’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막 뛰었죠.”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와 체력시험까지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체력시험 종목은 100m달리기, 1㎞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좌우 악력 등 5개였다. 그는 ‘내일 시작하면 더 늦는다. 오늘부터 하자’고 다짐하며 도전에 나섰다.

매일 저녁 퇴근 후 집 근처 공원에서 1~2시간씩 달리기를 했다.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도 조금씩 개수를 늘려가자 거뜬해졌다.

합격 후 기초교육을 받은 중앙경찰학교에선 검도 1단도 땄다. 그는 “부모님이 말리실까봐 알리지도 않고 시험을 봤는데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자 ‘우리 딸 멋있다’고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이 된 뒤 맞닥뜨린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 배치된 강남구 신사파출소에선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취객을 상대해야 했고 절도범 검거 현장에도 투입됐다.

“처음엔 겁도 났어요. 하지만 제복을 입으면 놀라운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는 누군가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란 투철한 사명감이 생겼어요.”

이 순경은 요즘 경찰 제복의 역사, 세계 각국의 제복, 신(新) 소재 등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다.

동료들로부터 들은 제복에 관한 의견이나 자신이 느낀 점을 수시로 기록도 한다. “일반 의류와 경찰 제복 디자인은 차이가 있어요. 일반 의류는 아름다움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 돼요. 반면 제복은 계급장·호주머니 등의 디자인 하나 하나에 상징성·실용성과 같은 이유가 있어요.”

그는 “시민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법률과 외국어를 공부하는 선배들이 적지 않아 놀랐다”며 “이런 선배 동료들이 보다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제복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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