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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폴크스바겐과 옥시가 무너뜨린 신뢰

중앙일보 2016.08.03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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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갑작스럽게 내일 싱가포르로 떠난다. 여성 임원인 그는 고교 2학년 딸의 교육을 위해 이 기업의 아태 본부인 싱가포르 근무를 자청했다.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자리에 인원이 필요하게 되자 각국 내부에서 적절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공고하고 선발하기까지 절차는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지인은 이달 개학하는 현지 학교에 입학할 딸을 위해 두 달 먼저 출국을 원했다. 회사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인의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서둘러 뽑아 인수인계까지 출국 전에 마칠 수 있게 한 것을 포함해서다.

사실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서는 현지 인재 시장에서 적절한 사람을 채용해 쓰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순환 근무가 본사의 기업 문화를 퍼뜨리고 세계 각국에 있는 인재들을 장기적으로 교육하는 차원도 있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 회사의 직원에 대한 배려심을 칭찬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국내 진출 글로벌 기업에서 이 정도는 일상적이다. 임직원의 인사·교육·승진이 프로세스화돼 있고, 정확하고 공개적인 절차에 입각해 진행된다. 그 회사들이 대단하고 스마트한 기업이라서가 아니다. 오랜 기간 기업을 운영해 오면서 직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서다. 글로벌 기업의 HR(휴먼 리소스) 담당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국내 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런 체계적인 노하우를 체화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은 국내 기업들의 욕구가 강해서일 것이다.

임직원 관리뿐만이 아니다. 회사의 장래와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하고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는 방식에도 오랜 기간 기업을 운영하며 축적한 글로벌 프로세스가 작용한다. 수년 전까지 주요 언론들이 ‘글로벌 기업’ 면을 따로 만들어 이들의 기업 문화를 꾸준히 보도한 것도 그들의 방식이 국내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가 컸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과 옥시 사태를 보면서 그래서 더 의아스럽다. 소비자들이 두 기업을 믿었던 것은 역사가 깊은 브랜드, 그리고 글로벌 기업의 표준과 기준, 일하는 방식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뢰를 산산이 깨부수는 일이 일어났는데 어떤 과정으로 그렇게 됐는지, 회사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감독이나 법규에 구멍이 있는 국내 시장을 봉으로 봤던 건지, 본사에 존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국내엔 부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본사의 기업 문화 자체가 애초에 잘못돼 있었는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아마 세 가지 모두 문제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국내 기업들도 미국·중국·유럽 등에서 소비자와 만나야 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국내 기업들에도 이번 사태는 경종을 울린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원인을 분석하고 교훈을 얻어내야 한다.

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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