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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AI 기자’ 약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6.08.02 00:58 종합 20면 지면보기
인공지능(AI)이 온다. 알파고가 바둑 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둑처럼 목표가 분명하고 규칙이 정연한 게임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앞서는 일은 시간 문제였다. 내가 보기에 인공지능의 진정한 가치는 창의적 내용 영역에서 발휘된다.

작곡을 보면 알 수 있다. 바흐나 모차르트 양식으로 작곡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이미 오래전에 출현했다. 찰리 파커의 솔로를 듣고 즉흥적으로 잼을 하거나 게임 진행에 따라 실시간으로 작곡한 음악을 깔아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특정한 장르나 양식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고유한 창의성을 자랑하는 예술가급 인공지능이 있다는 것이다. 의심스러운 분은 스페인 말라가대의 이아무스라는 작곡가를 찾아 들어보시길.

언론은 어떤가? 자료를 수집해 뉴스 가치를 판단하고 기사를 만들어 내보내는 일 말이다. 언론은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대표적 내용 생산 및 전달 영역이 될 전망이다. 먼저 기사 작성을 보자. 잘 쓰인 기사란 실은 일종의 전형성을 갖추기 마련인데 인공지능은 원래 이런 전형성을 습득해 구현하는 데 능하다. 출입처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나 통신사에서 받은 기사거리를 인공지능을 이용해 뉴스로 만들어 제공하는 언론사가 이미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인공지능이 기사 쓰기를 배우는 동안 편집자도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을 얻는다고 한다. 즉 인간과 기계가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뉴스 가치를 학습해 판단할 수도 있다. 학습형 알고리즘을 갖춘 인공지능에 이용자 반응을 자료화해 제공하면서 교육하면 된다. 이용자 반응만으로 미심쩍으면 뉴스 전문가가 평점을 주는 방식도 도입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의 뉴스를 가지고 출고 시간과 지면을 달리해 이용자 반응을 확인하는 방법론을 적용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맥락적 뉴스 가치까지 교육할 수 있다.

편집과 편성은 쉬운 편에 속한다. 인공지능은 특히 개별 이용자에게 ‘개인화된 편집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능하다. 이용자의 관심과 선호에 맞춘 기사를 선별해 이용자의 생활습관에 따라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뉴스를 배달할 수 있다. 이용자 관심과 선호란 정의하기도 애매하며 측정에 오류가 만연하다는 반론이 가능하겠다. 인공지능은 그런 애매함과 오류까지 감안해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나는 인공지능만으로 언론사를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좋은 뉴스를 만들어 제공하는 일에는 게임에서 이기거나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회적 책임성이다. 기사 가치의 판단·제작·편집 등 모든 과정에 윤리적 판단이 개입하며, 이로 인해 유사한 정보적 가치를 가진 뉴스라도 다른 사회적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논쟁적이며 복잡한 사안에 대한 균형 잡힌 기사를 쓰는 일은 훈련받은 인공지능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공정하게’ 의견을 반영하는 일은 전문적 기자만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라면 모두가 좋아할 만한 최대 효용을 갖춘 기사감을 가려내는 데 능할 것이다. 그러나 윤리적 기자만이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주목하는 사안을 발굴할 수 있다. 요컨대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언론인만이 선한 결단을 내릴 수 있고, 그 결단에 대해 책임질 수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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