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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푹푹 찌는 밤엔…톡 쏘는 이 맛

중앙일보 2016.08.01 00:51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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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를 마시는 순간 입안에서는 수만 개의 기포가 퍼지며 통증이 잠시 느껴지지만 곧 혀를 어루만지는 단맛, 그리고 목구멍이 뻥 뚫리는 경쾌함이 찾아온다. 우리가 청량감이라고 표현하는 탄산 특유의 식감이다. 이산화탄소의 기체 상태를 일컫는 탄산은 ‘매운맛’과 마찬가지로 맛이라기보다 통증에 가깝다. 익숙해지면 중독성을 부르는 것도 닮았다.

90년대 후반 주머니 가벼워진 일본
가볍게 마시는 문화 확산되며 시작
위스키에 탄산·주스 섞은 ‘하이볼’
최근엔 소주 베이스 ‘추하이’ 인기
새로운 맛 찾는 애호가들 늘어나며
국내도 위스키·소주·막걸리로 확산

국내에서 탄산은 주로 콜라·사이다 등 청량음료의 영역이었다. 이것이 물(탄산수)로 확장된 게 불과 수년 전이다. ‘페리에’ ‘트레비’ 등이 스타벅스만큼 인기를 끌면서 올해 탄산수 시장 규모는 1000억~1500억원에 달할 걸로 전망된다.

탄산수에 익숙해진 이들은 이제 알코올에서도 청량감을 추구한다. 올여름 20~30대 젊은 층과 여성들이 막걸리와 사케·위스키에서까지 ‘톡톡 튀는 맛’을 찾는 이유다.

# 사이다에 타 먹는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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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쏘는 청량감을 내세운 탄산주가 젊은 층에게 인기다. 스파클링 와인처럼 기포가 풍성한 ‘복순도가 손막걸리’를 따는 모습(왼쪽)과 샴페인잔에 따른 상태. [사진 오상민 기자, 촬영 협조=리델]

‘여실 때 천연탄산에 주의하세요’라고 적혀 있는 막걸리병의 마개를 조심스레 돌렸다. 쉬익쉬익 소리와 함께 탄산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병 안에서 소용돌이 치듯 투명한 액체와 희부연 부유물이 위아래로 뒤섞였다. 요구르트 빛깔의 이 독특한 전통주 이름은 ‘복순도가 손막걸리’. 들이켜는 순간 어릴 적 사이다를 처음 마셨을 때 같은 쾌감이 목젖을 간질였다. 양은 사발에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어 마시던 시절의 달콤새콤한 뒷맛이 따랐다.

“할머니가 직접 담그시던 비법 그대로 만든 술을 7년 전 처음 대중화했는데 최근 들어 찾는 사람이 많아져 하루 150병(935ml 기준) 생산량을 맞추기 버거울 정도예요.”

‘복순도가’ 김민규(34) 대표의 말이다. 울산 도가에서 국산 쌀과 전통 누룩을 이용해 항아리에 발효시키는 이 술은 발효 기간이 30~45일로 일반 양조 막걸리(일주일 정도)에 비해 길다. 발효가 길수록 탄산도 풍부해지는데 이를 밀착 보관하기 위한 용기 개발에만 1년이 걸렸다.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만찬에서 건배주로 선정된 이래 각종 국가 행사에서 ‘샴페인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애용되고 있다.

생막걸리 상태라 유통기한은 20일 정도로 짧다. 전통주 전문점에선 와인잔에 서빙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백곰막걸리&양조장’ 이승훈 대표는 “대다수 고급 막걸리는 탄산을 줄이고 드라이함을 추구하는 편인데 복순도가는 정반대”라며 “그래서인지 탄산수에 익숙한 젊은 세대나 막걸리의 새로운 맛을 찾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막걸리의 탄산 바람은 대형 주류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2012년 출시된 국순당 탄산막걸리 ‘아이싱’은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판매량 1800만 캔을 돌파했다. 금복주도 8월 청포도맛 탄산막걸리를 출시한다. 이들은 위생·유통기한 등을 감안해 천연이 아닌 인공탄산가스를 주입한다.

# 혼술·저도주 열풍 타고 대중화

국내 탄산주 바람은 수년 전부터 불어닥친 저도주(低度酒) 열풍에 힘입고 있다. ‘혼술(혼자서 술 마심)’이 보편화하고 독주 위주의 회식 문화가 내리막길을 타면서 술과 음료의 경계를 오가는 낮은 도수 알코올이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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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당 탄산막걸리 ‘아이싱’과 위스키 에 탄산을 섞은 ‘스카치 블루하이볼’. 화이트와인 베이스의 ‘부라더소다’(왼쪽부터).

한동안은 화이트와인 베이스 탄산주가 대세였다. 주원료를 화이트와인으로 하고 여기에 탄산과 과일향·과일즙 등을 첨가했다. ‘순하리 소다톡’ ‘이슬톡톡’ ‘트로피칼 톡 소다’ ‘부라더 소다’ 등이다. 모두 알코올 도수가 3~5도 정도로 낮아 20~30대 여성층에서 인기가 높다. 가격은 일반 소다수보다 조금 비싼 1500원 안팎이다(330ml 마트가 기준).

최근 들어선 보드카·럼·위스키 같은 양주에 탄산음료를 섞어 캔이나 병에 담은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호주·일본·미국 등에서는 ‘RTD(Ready To Drink)’라고 불리며 빠르게 대중화하고 있는 제품군으로 알코올 4~7% 정도다. 최근 롯데주류가 출시한 ‘스카치블루 하이볼’은 위스키 스카치블루(40도)에 탄산을 섞어 알코올 도수 7%에 즐길 수 있게 했다. 앞서 오비맥주가 선보인 ‘믹스테일’은 맥아를 발효해 얻은 양조 원액(증류주 베이스)에 탄산감을 더해 모히토와 스트로베리 마가리타 두 가지 맛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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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주 열풍은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시작됐다. 경기 침체의 수렁 속에서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한잔 술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부터다. 위스키 베이스에 탄산·주스 등을 혼합한 ‘하이볼(highball)’이 대중화했고 최근엔 소주 베이스의 탄산주인 ‘추하이(CHU-Hi·사진)’가 선풍적 인기다. ‘추하이’란 소주(Shochu)와 하이볼을 합성한 말로 소주에 탄산과 과즙을 섞은 술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0월 수입 판매되기 시작해 10개월 만에 60만 개 이상 팔려나갔다(이마트 집계).

# 탄산 사케, 스파클링 와인 넘보는 오묘함

일본 전통주인 사케도 탄산 제품이 있다. ‘발포일본주’라고 불리는데 스파클링 와인 제조와 동일하게 병 내 2차 발효 혹은 탄산가스 주입을 통해 사케에 청량감을 더한다. 일부 양조장에서만 소량으로 생산했지만 최근 탄산주 트렌드와 맞물려 존재감을 넓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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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 사케 ‘미요시키쿠 준마이긴조 오마치’ ‘가제노 모리’(왼쪽부터).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생산되는 ‘가제노 모리’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전문 일식집이나 고급 이자카야에서만 맛볼 수 있다. 서울 서래마을 ‘스시만’의 권오준 셰프는 “사케 애호가들 가운데 색다른 제품을 원하는 이들이 식전주로 즐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미요시키쿠 준마이긴조 오마치’ 등의 탄산주를 서빙할 때 와인잔 비슷한 전용 잔을 쓴다. 쌀·누룩·효모·물로만 만들어지는 정통 사케인데도 파인애플 비슷한 열대 과일향이 났다. 한입 삼키자 탄산감과 함께 목넘김 때 쓴맛과 알코올이 짧고 굵게 차올랐다. 국내 수입사인 ‘니혼사케’의 마쓰구 준이치 영업부장은 “나마(生)사케 자체가 냉장 보관(-5도)해야 하고 배송도 까다롭지만 최근 한국에서 탄산 나마사케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지면서 수입을 늘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유통·보관 등의 문제로 나마사케 가격은 동급 사케에 비해 30% 이상 비싸다. 
 
음식상식 와인을 2차 발효해 탄산 품게 한 게 스파클링 와인

발포주인 스파클링 와인은 1차 발효한 와인에 당분과 효모를 첨가해 병 안에서 2차 발효를 통해 탄산가스를 용해시킨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샴페인(Champagne)이 대표적이다. 샴페인을 비롯한 발포성 스파클링 와인을 딸 때는 별도의 오프너가 필요 없고 조심스레 돌려 딴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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