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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한 까닭

중앙선데이 2016.07.31 00:30 490호 28면 지면보기
우리 뇌 속에서 객관적 판단은 성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객관적인 사실이라도 우리의 뇌가 판단에 필요한 사실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은 주관적이다. 선택을 해야 하지만 의견이 다를 때, 다수결(多數決)은 유용하다. 다수결은 누구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공정하다는 믿음을 생성한다. 그러나 다수결에 대한 신봉은 집단사고로 변질되기 쉽다.



집단사고는 조직내부에 형성된 기류에 따라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과 관계없이 집단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을 말한다. 집단사고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침묵은 동의로 간주된다. 이로 인해 집단이 선택한 대안은 과대평가되지만 다른 대안은 쉽게 무시된다. 그러나 다양한 변수와 대안을 고려하지 못한 판단은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집단사고의 외형은 토론이지만 내용은 압력이다. 우리의 뇌는 집단의견이라 느끼면 자발적으로 순응한다. 1952년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8명의 실험참가자에게 정답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쉽게 맞힐 수 문제(4개의 선 중 길이가 같은 2개의 선 고르기)를 제시했다. 실험참가자 중 진짜 실험대상자는 1명뿐이었고, 나머지 7명은 일부러 오답을 선택하는 연기자들이었다. 실험결과, 50%가 넘는 참가자들이 집단을 따라 오답을 선택했다. 실험을 반복하자, 참가자의 75%가 적어도 한번은 오답을 선택했다. 그러나 누구도 실험참가자에게 집단의견을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2005년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 교수는 애쉬의 실험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실험참가자들의 뇌 활동을 관찰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번스 교수의 관찰에 따르면, 집단의견에 동조한 사람들은 시각과 공간 지각을 통제하는 뇌 부위에서 지각의 왜곡현상이 발생했다. 집단의견에 맞추어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서 인지적 착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의 뇌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의견이 다르면 무의식적으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사물이 밝게 보이는 시각적 착시가 일어나는 것처럼 집단의견과 다르면 뇌 속에서 인지적 왜곡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 에모리 대학 연구팀은 집단과 다른 의견을 내놓을 때 사람들의 뇌 속에서 고통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사회적 거절을 당하면 주로 신체적 통증이 있을 때 활동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집단사고에 반하면 불안과 소외감은 물론, 신체적 통증까지 유발하는 사회적 거절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집단사고에 동조하면 소속감이 주는 안심과 감정적 편안함은 물론, 반론에 필요한 인지 자원까지 아낄 수 있다.



집단사고는 동조하는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더욱 큰 압력으로 작동하고, 이러한 압력이 더 많은 동조를 이끌어 낸다. 특히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이 강할수록 외부 의견으로부터 고립되기 쉽고, 집단에 더욱 의존하게 되어 집단사고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로마가톨릭교회는 중요한 자리에 사제를 임명할 때, 일부러 후보자의 약점을 꼬집으며 선출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두었다. 자유롭게 반론하는 악마의 대변인이 불편할수록 집단사고의 덫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소한 이견 없이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고 느낄 때가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한 순간이다. 반론할 수 없는 것은 의견이 아니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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