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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맥아더 장군과 숨은 영웅들을 불러내다

중앙일보 2016.07.30 00:01
1950년 9월 15일, 모두가 불가능하다 여긴 위험천만한 작전이 성공했다. 한국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역사적 순간이다. 그리고 그 뒤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숨은 영웅이 있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인천에 상륙시키려 치열하게 북한의 정보를 빼낸 전사들. ‘인천상륙작전’(7월 27일 개봉, 이재한 감독)은 이들의 활약을 그린다. 영화의 총지휘를 맡은 이는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 언론 시사회 직후 그를 만나 제작 과정을 들었다.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과 사건도 함께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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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스틸. 중앙포토

 
| 삼고초려 캐스팅

정태원 대표가 가장 공들이고, 가장 먼저 결정한 캐스팅은 바로 맥아더 장군 역의 리암 니슨이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의 영문 시나리오와 영화의 컨셉트 이미지 등이 조합된 영상을 니슨에게 보냈다. “‘안 될 게 뭐 있어?’라 생각했다.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에게 듣는 '인천상륙작전' 제작기


니슨은 맥아더 장군을 연기하고 싶어 했다. 그의 스케줄 문제로 좌초될 뻔했지만, 촬영 기간·장소 등 모든 조건을 니슨 뜻에 맞추겠다고 했다.” 결국 니슨은 ‘테이큰’(2008, 피에르 모렐 감독) 출연료의 12분의 1 정도만 받고 출연을 수락했다.

이어 성사된 캐스팅은 북한군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 역의 이범수. “이범수는 잔혹하고 집요한 림계진을 연기하고 싶다고 강하게 피력했다. 체중을 7㎏나 늘리고 북한 사투리와 러시아어를 열심히 배웠다.”

이정재에게 장학수 역을 권한 이도 정 대표다. 두 사람은 이정재가 데뷔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긴 인연을 이어 온 관계. 캐스팅 과정에서 이정재의 뜻에 따라 시나리오도 조금 수정했을 정도로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이 영화에는 박성웅·이원종·김선아·추성훈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특별 출연도 눈에 띈다. 이원종은 김일성 최고사령관으로 등장하고, 추성훈은 완력으로 장학수를 위협하는 북한군으로 등장한다. 정 대표와 오래 알고 지낸 이들의 지원을 가리켜 정 대표는 “의리 출연”이라 말했다.

 
| 첩보 드라마+전쟁 액션

정 대표가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한 건 TV 드라마 ‘아이리스’ 1편(2009, KBS2)을 마친 후인 2010년부터다. 워낙 전쟁에 관심이 많은 그가 이 소재를 택한 건 “승리한 작전”이기 때문이다.

“낙동강 지역이 함락되기 직전,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준 작전이었다. 아직 살아 계신 참전 용사들께 그날의 기쁨을 다시 선물하고, 젊은 세대에겐 안보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

2012년, 인천상륙작전 관련 자료를 찾다 ‘X-Ray 작전’과 이를 수행한 해군첩보부대에 대해 알게 됐다. “맥아더 장군 뒤에 해군첩보부대를 이끈 임병래 중위, 홍시욱 하사 그리고 이들을 따른 민간인 부대원이 있었다.”

이 영화의 중반까지는 장학수 대위 일행이 기뢰부설해도(적을 막기 위해 바다에 심어 놓은 폭탄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빼내려는 첩보 드라마가, 그 후엔 맥아더 장군의 함대가 월미도를 폭격하는 전투 장면이 이어진다. 정 대표는 “전쟁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는 관객을 위해 전투 분량과 스케일을 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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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스틸. 중앙포토

 
| 7월 27일, 한국휴전협정일 개봉을 목표로

‘인천상륙작전’은 2015년 12월 촬영 시작 후, 남북이 휴전 협정을 맺은 1953년 7월 27일에 맞춰 개봉하는 걸 목표로 달려왔다. 촬영은 2016년 3월까지 약 석 달간 총 62회 차로 진행됐고, 촬영 종료 후 7월까지 약 넉 달간 후반 작업이 이뤄졌다. CG(컴퓨터 그래픽)와 특수효과가 많이 쓰이는 전쟁영화를 만들기엔 물리적으로 빠듯한 시간이었다.

“촬영 시작부터 정서적 장면을 맡은 이재한 감독팀, 액션·CG 장면을 담당하는 B유닛을 따로 꾸렸다. 시간 절약을 위해 촬영이 끝나는 대로 CG 작업을 했다.” 정 대표의 말이다.

정 대표는 “운 좋게 마땅한 촬영지를 구한 것도 촬영 기간을 줄이는 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주 촬영은 ‘암살’(2015, 최동훈 감독)을 찍은 경남 합천에 위치한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진행했고, 북한군이 구축한 진지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은 경남 창원의 마산로봇랜드에서 찍었다. 조성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던 마산로봇랜드를 찾아내, 대우건설과 창원시에 공사 재개 일자를 늦춰 달라고 도움을 요청해 다행히 촬영을 마무리했다고.

후반 작업 시간을 아끼기 위해 CG는 한국의 넥스트비주얼과 영국의 CG 회사에 나눠 맡겼다. 맥아더 장군의 함선이 거친 태풍을 뚫고 인천으로 향하는 장면은 영국 CG 회사가 담당했다. ‘인천상륙작전’은 ‘포화 속으로’(2010, 이재한 감독)에 이은 정 대표의 두 번째 한국전쟁 영화다. 그는 “제목 그대로 ‘서울 수복’을 다룬 신작을 꿈꾼다”며 “한국전쟁 3부작을 만드는 게 목표”라 말했다.
 
|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역사적 사실
- 임병래 중위와 장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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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에서 이정재가 맡은 역할은 해군첩보부대 대위 장학수. 최고사령부 상급 검열관으로 위장해 북한군이 점령한 인천에 잠입하고,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의 눈을 피해 인천 바다 내 기뢰 정보와 작전 상황을 UN(United Nations·국제연합)군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이다.

장학수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은 해군 중위 임병래. 1922년 부산에서 태어난 임 중위는 미 해군첩보부대 창설 요원으로 활동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의 첩보수집특공대 조장으로 대북 첩보 ‘X-Ray 작전’을 이끌었다.

이후 인천 월미도에서 북한 군관 두 명을 납치해 북한군 병력, 장비 위치 등 군사 첩보를 수집하고 적 상황을 탐지하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날 영흥도 첩보 기지가 북한군의 공격을 받게 되고, 임 중위는 적에게 포위됐다. 자신이 생포돼 고문을 받을 경우 아군의 정보가 누출될 거라 판단한 그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자결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정부는 임 중위의 공로를 기려 충무무공훈장(1951년)·을지무공훈장(1954년)을 추서했으며, 미국 정부는 1953년 7월 6일 은성훈장을 수여했다. 2012년 해군은 임병래 중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유도탄고속함 10번 함을 ‘임병래함(PKG-722)’으로 제정했다.

-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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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중앙포토

리암 니슨이 연기해 더욱 주목받고 있는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에서 UN군 총사령관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다. 전쟁 한 달 만에 낙동강 동쪽을 제외한 한반도 전 지역이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는 불리한 상황이 되자, 그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다. 그리고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9월 15일 자정,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1월 1일 압록강 국경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사령관에서 해임됐다. 영화에서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는 장군들은 맥아더 장군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불가능한 작전을 밀어붙인다고 의심하지만, 그 자신은 그것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해임된 후 195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특히 맥아더 장군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사람은 나이가 먹었다는 이유로 늙지 않는다. 사람은 꿈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게 하지만 인생에 대한 호기심을 잃으면 영혼의 주름살이 생긴다” 등의 경구가 대사로 등장한다.

-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사전 작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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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 밖에 되지 않았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해군첩보부대의 ‘X-Ray 작전’을 중심으로 보여 준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사전 작전들이 더 많았다. 먼저 양동 작전 중 하나가 작전명 174로 불린 ‘장사상륙작전(이재한 감독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포화 속으로’를 연출한 바 있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남포·해주·군산·울진 등에 상륙할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리며 북한군을 교란시켰다. 그리고 학도병 772명이 문산호를 타고 장사에 상륙해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장사상륙작전을 계획했다. 문산호가 좌초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학도병들은 경북 영덕 장사동으로 이동해 끝까지 국도 차단 임무를 수행했지만, 북한군에 의해 대부분 전사했다. 장사상륙작전은 학도병들의 목숨 값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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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영화에도 등장하는 KLO부대(Korea Liaison Office·주한 첩보연락처, 일명 켈로부대)의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 1949년 6월 주한 미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 산하 특수부대로 창설된 켈로부대는 대북 첩보를 수집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게릴라 작전을 주로 펼쳤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맥아더 장군은 켈로부대에게 “팔미도 등대를 밝혀라”라는 명령을 내린다.

열여섯 명의 KLO 부대원과 미군으로 구성된 한미 연합 특공대가 명령을 받은 즉시 팔미도로 향했고, 이곳에서 다섯 시간이 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등대에 불빛을 밝히는 임무를 완수하며 261척의 UN군의 함정을 인천으로 불렀다.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은 ‘5000 대 1의 성공 확률’ ‘세기의 도박’이라 일컬어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전개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지영·김나현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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