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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상남자는 왜 눈물을 흘렸나

중앙일보 2016.07.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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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심수휘 기자


지천명(知天命)이라, 공자님 말씀하시길 나이 쉰에 이르면 하늘의 뜻을 안다 했는데 얼마 전 길을 걷다 파란 하늘을 보니 외로운 느낌과 함께 뜻 모를 눈물만 핑 돌아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눈물 고민을 호소하는 중년 남성들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엔 이런 사연을 받기도 했죠.

 

'저는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상남자입니다. 축구를 좋아해 조기 축구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얼마 전 중요한 축구경기 보려고 일 끝나자마자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전 같으면 채널을 확 돌려 버렸을텐데 요즘 아내가 무서워져 어쩔 수 없이 뒤에 조용히 앉아 드라마를 봤죠.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는데 말이죠. 창피해서 아들 방으로 살짝 가 눈물을 참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대성통곡이 터져 나와 저도 모르게 배우 조인성처럼 주먹으로 입을 막고 참았습니다. 이거 혹시 우울증인가요.'


중년 남성을 당황케 하는 이 눈물은 우울증상이 아닙니다. 그간 참았던 감정이 솔직하게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남자는 울면 안돼, 속내를 드러내면 안돼, 강해야 해’ 같은 남자의 감성을 옥죄던 프레임의 힘이 약해지면서 마음 속 감정이 밖으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중년 들어 남성이 여성화한다고 합니다. 실제 호르몬 변화가 있긴 하지만 남자가 여자로 바뀔 리는 없죠. 워낙 섬세한 감성을 갖고 있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가 중년 들어 힘이 빠지면서 그 감성이 솔직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성이 건조하게 태어났다면 수 많은 남성 예술가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더 강하다고들 하지만 심리적 측면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더 여리고 섬세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여성은 모성애가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지천명에 눈물이라니 퇴행이 아닌가 싶지만 지천명의 뜻이 ‘마흔까지는 주관적 세계에 머물다가 50세가 되면서 보편적 성인의 경지로 들어간다’는 것이라니 중년의 눈물은 오히려 지천명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주관에서 보편으로 시각이 변화하려면 공감 능력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공감은 내 주관에서 벗어나 상대방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이입 현상입니다. 내 감성이 자유롭게 움직여야 가능하죠. 중년의 눈물은 내 감성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이야기합니다.

눈물의 이면에는 눈물 짓게 하는 감성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외로움, 텅 빈 것 같은 허무감이 그런 예입니다. 강한 남자로 살았는데 갑자기 이런 감성이 찾아 오면 불편하고 당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감성은 인생 후반전을 풍요롭게 해주는 에너지원이기도 합니다. 예술적 감성을 풍요롭게 해줘 삶을 더 잘 느끼게 해주죠. 젊었을 때 눈에 들어 오지 않던 꽃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축구처럼 치열한 승패가 없는 로맨스 드라마에 빠져들어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성을 내가 약해진 신호로 인식해 억지로 강한 남자 이미지를 유지하다 보면 힘만 빠지고 인기 없는 까칠한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기 쉽습니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강한 남자를 유지하려는 게 나를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중년 들어 찾아 오는 외로움, 허무, 그리고 눈물을 세상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년의 이런 감성 변화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물학적 생존뿐 아니라 문화를 계승하는 게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입니다. 인생 전반부가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시기였다면 인생 후반부는 문화를 계승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머리 빠지고 팔다리 힘 없어지면서 생물학적 매력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예술적 감수성은 증가해 오히려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은 더 커진다는 겁니다. 항노화 하겠다며 억지로 자기를 젊게 만들어 젊은이와 경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에 저항해 힘만 빠지게 합니다. 내 나이가 가져 오는 섬세한 감정 반응의 파도에 내 몸을 맡기고 즐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섬세한 감성 변화를 활용한 행복 증가 팁

1. 나만의 문화적 취미가 필요하다. 워렌 버핏의 스트레스 관리법이 우클렐레라 한다. 스트레스 관리는 스트레스를 나쁘다 생각하고 피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스트레스에 지친 뇌에 즐거움을 주어 재충전하는 것이다.

2. 자연과 친하게 지내고 몸의 움직임을 즐긴다.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하면 운동이 숙제가 돼 동기가 떨어진다. 자연을 즐기고 내 몸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건강도 찾아온다.

3. 좋은 관계 만들기. 72년 동안 700여 명을 지속적으로 살펴 본 하버드대 연구 결과를 보면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이 더 성공하고 행복하다. 이걸 칼럼에 인용했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그걸 연구를 안하면 모르냐, 하버드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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