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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불어 바닷물 전복되면, 자연산 살고 양식 전복은 죽어

중앙선데이 2016.07.24 00:33 489호 27면 지면보기

1 귀했던 전복을 양식 덕분에 쉽게 맛보게됐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 조선 중기 시인 윤선도의 자취가 물씬한 보길도는 깊은 산의 정취를 가졌다. 지금이야 카페리가 뜨지만 이전에는 완도나 해남 땅끝에서 여객선을 타고 노화도를 거쳐야 했다. 간혹 노화도에서 작은 배를 갈아타기도 했다. 보길도는 다도해국립공원의 명소 이상이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 달그락거리는 갯돌로 유명한 예송리에는 천연기념물 상록수림과 감탕나무가 있고 윤선도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와 한시를 쓰던 부연동과 세연정이 원형을 보전하고 있다.


[동물도 이웃] 바다의 별미 전복

그런데 주민들은 자긍심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지형이 낮고 편평한 인근 노화도는 농업이 흥한 덕분에 인구 6000명 가까운 읍 소재지로 성장했지만 비슷한 면적의 보길도는 윤선도가 찾을 때만 해도 무인도였다. 노화도에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어도 깨끗한 숙박시설이 몰려있다는 건 보길도가 코앞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노화도에 짐을 풀고 보길도를 다녀오곤 했는데, 보길도 주민은 그래서 불만이었다. 돈은 노화도에서 쓰고 쓰레기만 내려놓는다는 거였다. 보길도와 노화도 사이에 보길대교가 놓인 요즘 두 섬 사람들은 가까워졌으려나. 산이 많은 보길도에 댐을 만들고 노화도에 물을 전량 공급할 적에 두 섬 주민은 방문자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냉랭했다. 상수도 관로를 공유하는 요즘은 아무래도 달라졌겠지.



 

오분자기는 숨구멍 숫자가 전복보다 많고 다 자라도 몸이 8㎝에 그친다. [그림 박성곤]



완도·보길도 주변 빼곡한 전복 양식장하지만 여행자를 사로잡던 보길도의 눈맛과 입맛은 그대로일 것이다. 싱싱하게 올라오는 완도 일원의 해산물은 다양하고 맛은 상상 이상이다. 보길도의 별미는 아무래도 전복이다. 그도 그럴 게 보길도와 노화도 주변은 전복 양식장으로 빼곡하지 않던가. 양식장의 그물주머니에서 막 끌어올린 전복을 손님 앞에서 어슷하게 썰어 접시 가득 내놓는 전복회는 수도권 여느 식당보다 도톰할 뿐 아니라 신선하기 이를 데 없다. 어금니에 힘을 주며 아작아작 씹을 때마다 특유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는데 가격까지 저렴하니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선착장 앞의 식당에서 지갑이 허용하는 만큼 주문하면, 방문객은 평생 먹은 양보다 많은 전복의 맛과 향을 뇌리에 각인하리라.



울퉁불퉁한 한 장의 패각으로 등을 덮는 전복은 넓적한 발로 바위를 천천히 기며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갈조류를 갉아먹는 연체동물이다. 타원에 가까운 등껍질 가장자리에 불룩 튀어나온 너덧 개의 구멍으로 호흡하며 깨끗한 바다의 수심 낮은 암초에 붙어 사는데, 거기에는 해조류가 많지만 천적도 적지 않다. 집요한 불가사리와 문어는 물론이고 돔이나 가오리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어린 전복은 바위틈에 숨어들고, 30㎝ 가까운 큰 전복은 껍질에 굴·홍합과 이끼를 붙여놓았다.



발에 힘을 주어 바위에 착 달라붙기 전에 칼날을 쓱 밀어넣는, 사람은 전복의 경계 대상 1호다. 거무튀튀한 얇은 껍질에 굴이나 홍합을 붙여놓고 해조류 덮인 바위를 천천히 움직이니 바위의 일부로 착각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건 오랜 천적일 따름이다. 느닷없이 다가온 인간 앞에서 전복은 속수무책이다. 해녀의 물질이 닿는 곳보다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수밖에. 하지만 잠수 장비가 널리 보급되면서 달아날 방법이 궁해졌다.



살이 딱딱해 서양 사람들이 그리 즐기지 않았지만 동북아시아권에서는 없어서 아쉬울 따름인 전복. 맛이 빼어날 뿐 아니라 진귀하니 돈이나 권세가 있는 이의 오랜 별식이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꿈꾸며 즐겼다는데 세계적으로 100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5종 중에 참전복은 겨울철 평균 수온이 섭씨 12도 이하인 제주도 북녘에 분포하고 덩치가 작은 오분자기와 말전복·까막전복·시볼트전복은 제주도 이남에 드물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백질과 비타민은 물론이고 칼슘과 인 같은 무기질이 풍부한 전복은 건강식으로 그만이라고 상인들은 입에 거품을 문다. 허약체질 개선과 자양강장에서 그치지 않는단다. 산후조리와 피부미용에 좋다고 하니 남녀노소 모두 즐겨야 할 텐데, 진귀한 만큼 그림의 떡이다. 찾는 이 많으니 수입을 마다하지 않을 텐데, 어느 나라 어느 해역에 흔전만전하다는 소문이 돌기 무섭게 그 지역의 전복 어획고가 곤두박질칠 정도라고 한다. 아쉬움에 입맛 다실 때, 궁즉통! 과학기술이 나섰다.



 

2 태풍 ‘볼라벤’이 2012년 8월 한반도를 강타했다. 역대 태풍 가운데 다섯째로 강한 바람을 동반했던 볼라벤으로 쑥대밭이 된 전복 양식장을 어민이 바라보며 한숨짓고 있다. [중앙포토]



바위 위 갈조류 갉아먹는 연체동물가끔 죽으로 전복을 알현해야 했던 소비자는 양식 기술 덕분에 맘먹을 때 반길 수 있게 됐다. 주택가의 생선회 식당에서 전복회를 서비스로 내주는 호시절이지만 먹는 이가 늘어나면서 양식장도 수와 면적을 늘렸다. 완도군 주변은 여객선이 교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복 양식장이 빼곡하다. 보길도는 덕분에 전복회와 전복죽을 푸짐하게 내놓지만 다른 생선과 조개들은 자취를 감췄다. 정상 밀도를 크게 초과하는 양식장에 들여놓는 먹이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종묘배양장에서 파래처럼 연한 부착조류를 먹으며 1㎝ 크기로 자란 종패는 양식장의 그물주머니로 들어가 미역과 다시마를 먹어치우는데, 부화 후 1년이면 길이가 2.5㎝, 2년이면 6㎝, 3년이면 9㎝ 이상 자라며 양식장 사업자에 부가가치를 약속한다. 그런데 미역과 다시마는 주변에 충분할까. 다행히 전복 양식장 주변 해역은 미역과 다시마를 뿌리 내리게 허용해주지만 언제까지 호시절이 지속할 지 알 수 없다. 바다가 뜨거워진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이 뜨거워지면 생물상이 크게 바뀐다. 해조류가 풍성했던 바다에 백화현상이 발생하더니 드물어진 해조류를 결딴내는 성게가 순식간에 퍼지다 죽어간다. 성게마저 사라지면 바다는 사막이 되는데, 거기에 해파리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복 양식장에 독성 강한 해파리가 떼로 습격해 어장이 쑥대밭됐다는 보도가 속출한다. 전복 배설물을 분해하는 플랑크톤이나 플랑크톤을 먹는 작은 생선을 노리겠지만 한가득 해파리를 들어올려야 하는 새우잡이 어민은 태풍으로 바다가 뒤집히길 바랄 뿐이다.



태풍은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강도가 커졌고 발생 횟수도 늘었다. 태풍으로 바다가 뒤집히면 해파리가 줄어들고 어획량이 늘어날 것으로 어민들은 기대하지만 완도 해역의 전복 양식 사업자는 파산을 걱정해야 한다. 양식장이 아수라장으로 바뀌지만 그물을 빠져나온 전복은 쓰레기 범벅이 된 바다에 흩어져 굶주리고 만다. 태풍으로 바다가 뒤집어져야 갈조류가 바위에 다시 싹트고, 그 자리에 전복이 알을 낳던 해양생태계는 다채로웠지만 전복이 양식장에 구속된 이후 생태계는 단조로워지고 태풍은 두려운 존재가 됐다.



양식장 밖의 전복이 두려워하는 것은 태풍보다 남획이다. 잠수 인구의 증가에 반비례해 해안에서 줄어든 참전복은 양식 덕분에 수를 늘렸지만 양식이 수월치 못한 오분자기는 매우 드물어지지 않았나. 지겹게 편성되는 ‘먹방’이 문제를 일으켰는지, 각종 해물과 된장을 넣어 끓이는 ‘오분자기뚝배기’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었고, ‘오분자기돌솥밥’까지 덩달아 개발되니 보이는 족족 그만 제주도 해녀의 망태기에 들어가게 됐다. 오분자기가 동난 식당은 미안한 마음에 어린 전복을 듬뿍 넣으면서 자연의 전복마저 제주 앞바다에 드물어졌다고 한다.



 



숨구멍이 전복보다 많은 오분자기다 자란 몸이 8㎝에 그치는 오분자기는 껍질이 전복과 비슷해도 가장자리의 숨구멍이 7개 내외로 많고 전복과 달리 솟아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오분자기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자개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오분자기 껍질의 안쪽에 홀로그램 같은 진주빛 영롱한 무늬가 있어 예부터 자개의 재료로 사용했지만 그건 참전복이나 말전복과 마찬가지다. 탄산칼슘인 전복의 껍질은 3%가 넘는 유기질을 포함하고 적은 양의 마그네슘과 철, 그리고 요오드를 함유해 간의 기운을 북돋으며 눈에 좋다는데, 오분자기도 마찬가지겠지.



무기질이 많아 어린이 골 형성이나 노인의 골다공증에 좋다는 오분자기 껍질에 무슨 특별한 효능이 있는 걸까. 껍질을 갈아 만든 ‘석결명’은 백내장이나 안구충혈 같은 안과질환이나 신장결석과 요로결석을 완화한다고 한의사가 주장하는 걸 보아, 껍질째 넣어 뚝배기에 끓이는 오분자기가 몸에 좋은 건 불문가지! 전복도 마찬가지일 텐데, 전복 몸에 작은 돌을 넣으면 값 비싼 진주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전복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지는 셈이다.



회는 물론이고 죽과 탕으로 먹는 전복의 내장은 전복죽에 넣어야 제 맛이라고 한다. 껍질에서 내장까지 버릴 게 하나 없는 전복을 중국은 말려 먹는 모양인데, 상어 지느러미보다 비싸다고 한다. 캐나다 동쪽 해변, 바위가 드러나는 갯벌에 조금만 나가도 손바닥 크기의 전복이 와글와글했다던 해양학자는 요즘 거기에도 드물어졌다고 말한다. 허가 없이 잡으면 벌금이 수천 달러에 이르게 된 건 순전히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결혼을 앞둔 한 청년은 꿈에 전복에서 휘황찬란한 진주를 보았다며 인터넷에 해몽을 의뢰했다. 한데 해몽이 가슴을 부풀게 한다. 진리를 상징하는 진주는 단순히 재물이나 횡재를 넘어 태어날 아이가 당대의 빛을 발할 인재가 된다는 게 아닌가! 반드시 실현될 테니 나중에 연락을 바란다는 해몽에 어떤 확신이 묻어나는데, 그만큼 우리네에 전복이 특별하긴 한가 보다. 전복이야 동의하지 않겠지만.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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