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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수거하자, 학생들 숨겨둔 ‘더블폰’ 꺼내 게임

중앙일보 2016.07.23 01:13 종합 1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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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배민호]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학업시간 동안 교내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합니다. 휴대전화를 들고 등교한 학생들은 선생님께 제출한 뒤 수업이 끝난 뒤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초중고 80% 휴대폰 사용 금지…교사·학생 전쟁

21일 오전 8시50분,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A중학교 교실에 안내방송이 울려퍼졌다. 마이크가 꺼지기 무섭게 김모(34·여) 교사는 휴대전화 수거 가방을 꺼내 교탁에 올려놨다. 휴대전화를 하나씩 넣을 수 있게 돼 있는 그 안의 작은 주머니에는 1번부터 33번까지 순서대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폭 40㎝가량의 이 가방은 집단 휴대전화 보관용으로 한 업체가 제작한 것이다.

휴대전화를 들고 교탁 쪽으로 나오는 학생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수업시간엔 폰 안 쓰는데…”라는 하소연, “아 진짜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고…”라는 짜증 섞인 투정이 있었다. 휴대전화를 맡길 수 없다는 학생과 김 교사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김성표(15)군은 “오늘 중국으로 출장 간 아버지와 통화하기로 했다”며 애원했지만 김 교사는 굳은 얼굴로 “통화하기 직전에 휴대전화를 잠깐 꺼내주겠다”고 말했다.

10여 분이 지나자 수거 가방에 30개의 휴대전화가 모였다. 고장난 휴대전화를 AS센터에 맡긴 학생과 애초에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 두 명이 열외가 됐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이 일을 마치자 학생들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며 1교시 수업 준비를 했다. 몇몇 학생은 김 교사가 교실을 나가자마자 가방에서 다른 휴대전화를 꺼내 태연하게 게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겼다. 수거 가방에는 ‘제출용’ 휴대전화를 꽂아 넣고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진짜’ 휴대전화는 가방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학생들은 이를 ‘더블폰’이라 불렀다.

두 달 전부터 눈속임용 휴대전화를 제출해 온 정모(15)군은 “선생님께는 진짜 말하면 안 된다”며 “SNS를 통해 축구 관련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어 학교에서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스마트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건 A중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합법적인 소지품인 휴대전화를 왜 뺏느냐는 학생들의 주장과, 수업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교사의 입장은 곳곳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2013년 교육부가 학생들의 휴대전화 소지에 관한 학교별 규칙을 전수조사한 결과 초등학교는 58.7%, 중학교는 85.6%, 고등학교는 65.2%의 비율로 휴대전화를 아침에 수거해 수업 종료 후 돌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수거 조치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휴대전화 수거 여부는 각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정해진다. 일률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일부 학교에선 교사와 학부모들의 요구가 잇따라 어쩔 수 없이 수거하고, 또 다른 학교에선 학생들의 거센 항의로 수거 학칙을 없애기도 했다. 실제 학생들의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의 한 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미리 거둬 달라는 학부모들의 건의가 잇따라 지난해부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학교 측에선 학생들의 항의에 대한 논거로 ‘면학 분위기 조성’과 ‘교육권’을 내세운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모든 학생이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것이라는 의심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송파구 고교에 다니는 김주선(18)양은 “스마트폰을 뺏어도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어차피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고,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은 스마트폰이 있어도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교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할 의무와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 사이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인권위는 지난달 23일 ‘교내에서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을 금지하고 일괄적으로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조치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고교생 김모(18)군이 “휴대전화 압수 조치는 학생들이 누려야 할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김군은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통화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큰 힘이 되는데 학교 측이 과도하게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김군에게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권위는 접수된 진정 내용을 검토한 뒤 의견을 발표할 때 사실관계만 공개할 뿐 진정인의 개인적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게 돼 있다.

인권위 조사 결과 해당 학교는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는 데 더해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적발되면 벌점 10점을 부여하고 1개월간 압수하는 벌칙 규정도 두고 있었다. 이 같은 규정으로 지난해 1∼10월 총 107명의 학생이 휴대전화를 압수당하고 벌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해당 학교장에게 휴대전화 수거조치를 완화하라고 권고했다.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이었다. 인권위는 또 “학교가 생활규정을 운영할 때도 재량권을 넘어 지나친 제한조치를 가할 경우 인권 침해로 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인권위의 조치에 일선 학교에선 고민이 깊어졌다.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 조치를 없앨 경우 수업 진행에 큰 지장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채모(29) 교사는 “스마트폰을 빼앗지 않고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길 바라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난 더 이상 선생님으로 일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할 경우 또 다른 학생들은 학습권을 침해받게 된다는 점에서 ‘통신권’과 ‘학습권’이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다. 인권위의 권고 자체가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 등 교육의 본질을 무시하는 ‘비현실적 조치’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스마트폰의 사용 폐해가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인권위 권고는) 휴대전화 사용으로 인해 교육현장에 나타날 부작용을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S BOX] 사용 희망 시간에 수거함 열리는 ‘스마트폰 안전금고’ 운영도

초·중·고교의 약 80%는 교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수업 시작 전 휴대전화를 걷고 하교 직전에 돌려주는 ‘압수형’이 대세다. 일부 학교에선 아예 학교에 갖고 오지 못하도록 하는 ‘금지형’을 취하고 있다. 방과후에 부모와 반드시 연락을 할 일이 있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담임 교사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

최근엔 ‘압수형’과 ‘금지형’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을 의식해 ‘자율형’으로 전환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혀 규제하지 않는 학교와, 휴대전화를 수거하되 자율에 맡기는 학교들이 이에 해당한다. 경기도 수원시의 하이텍고에는 ‘스마트폰 안전금고’가 있다. 학생들이 각자 정한 스마트폰 사용 희망 시간에 한해 수거함 문이 열리도록 돼 있다.

이처럼 학교들의 사정이 다른 것은 학생들의 소지품 사용과 관련해선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자율적으로 학교 규칙을 제정해 운영할 수 있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9조) 때문이다.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문제 삼는 인권위 권고가 나오자 교육부가 ‘교통정리’에 나섰다. 교육부는 모범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의 사례를 살펴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금지와 자율의 중간 지점에서 학생과 교사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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