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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 열풍 부는 이유

중앙일보 2016.07.23 00:51 종합 15면 지면보기
16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후배를 만나 들었던 이야기다. 후배에게는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는 아침마다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다. 학생들은 주재원이나 대사 부모를 따라 미국·일본·한국·프랑스 등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학교에 가는 동안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하기 마련인 버스 안이 늘 조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침묵 속에 가던 버스 안에서 한 아이가 새로 산 자기의 신발 그림을 내보이며 자랑했다. “피카추!” 그 한마디에 다른 언어와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들며 “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각자 자기 나라 말로 부럽다는 표현을 하느라 떠들썩해졌다. ‘피카추’는 만국 공통어였다. 당시 베이징은 ‘아시아의 깨어난 용’의 개방 경제를 보고 외국인들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그 피카추 신발로 세계의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했던 아이는 자라서 최근 미국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지난주 미국에서 새로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주머니괴물게임 ‘포켓몬 고(GO)’의 열풍이었다. 시대에 밀려 다 끝난 줄 알았던 닌텐도의 주가가 부활하고 휴대전화도 종종 안 터진다는 미국에서 ‘주머니괴물 잡기’에 혈안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속초에서 유일하게 게임이 가능하다고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 유명한 ‘속초, 인제, 신남’ 갈림길 표지판이 ‘전설의 짤’로 다시 떠올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속초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잘되고 싶다’는 글이 인기를 끌었다.

포켓몬 고(고는 지리정보를 뜻하는 GEO에서 왔는지 ‘잡으러 가라’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증강현실을 이용한 게임이다. 증강현실은 AR(Augmented Reality)이라고 해서 현실의 실사 촬영된 이미지 위에 다른 가상의 정보를 덧씌워 만든다. 전체가 가상으로 이뤄진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 증강현실을 이용해 만든 게임은 포켓몬 고가 처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 통신회사와 음식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여러 가지 게임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기 심심할 때 증강현실로 나타난 가게 안의 벌레들을 잡는 식이었다. 구글이 만들다가 지지부진해져 구글 묘지(구글의 중단된 서비스들을 모아둔 사이트)에 미리 자리까지 잡아둔 구글 글라스(Google Glass)도 증강현실을 이용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 고가 뜨고 있는 것일까.

닌텐도도 한물 갔고 구글 글라스도 한물 가면서 가상현실과 3D 등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증강현실. 그 증강현실을 다시 폭풍으로 만들어 되돌아오게 한 것은 바로 그 피카추, 포켓몬이라는 캐릭터였다. 16년 전 아이들과 피카추 신발로 의사소통했던 그 아이의 머리에 추억으로 각인된 피카추는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생이 된 뒤에도 여전히 또 다른 포켓몬 게임의 불씨가 됐다. 어린 시절 경험한 콘텐트는 불멸의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포켓몬 고 열풍을 보며 많은 사람이 일본 문화산업의 저력을 부러워한다. MP3플레이어, SNS, 모바일 증강현실 게임 등 우리가 먼저 만들어 놓고도 뒤처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은 뭐하느냐”고 다들 걱정이다. 물론 드라마, K팝 같은 한류, 온라인 게임 등이 세계에서 여전히 사랑받고 앞서 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콘텐트가 왜 하드웨어인 전자제품, 스마트폰 등과 시너지를 못 내는지,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16년 전은 앨빈 토플러가 이미 “단순히 미국과 일본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지식기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하던 바로 그때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빠른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해 전 국민의 컴퓨터 보급률이 치솟던 때다. 21세기의 아침을 맞이하던 그 설렘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 아직도 생생하다. 늦지 않았다. 포켓몬 고가 우리에게 분발하라고 말하고 있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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