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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디스코 파티서 필립 만난 메이 “결혼 안 할거면 끝내자”

중앙일보 2016.07.23 00:46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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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주재의 마지막 각료회의 참석을 위해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 도착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중앙포토]

어렵다(difficult)·가차 없다(ruthless)·대담하다(bold).

영국 새 총리 메이 스토리

영국의 새 총리인 테리사 메이(60)에 대한 주된 묘사다. 총리로서 한 주 정도를 지냈을 뿐인데 다들 받는 인상은 유사했다. 강한 지도자다. 총선을 거치지 않았는데(mandate)도 그랬다.

일련의 행보에서 뚜렷하다.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되자마자 몇 시간도 안 돼 조각(組閣)을 시작했다. 대부분 유임될 것이란 전망과 달리 ‘피바람(bloodbath)’이 불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와 가까운 인물들을 다 날렸다.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 마이클 고브 전 법무장관 등이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을 맡을 세 자리엔 모두 탈퇴 진영 인사를 기용했다. 보리스 존슨을 외무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를 브렉시트장관, 리엄 폭스를 무역장관에 앉혔다. 각자 총리의 꿈을 꿨거나 꾸고 있을 정도로 ‘자기 어젠다’가 있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내세운 건 총리로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오랫동안 프런트 벤치(여야 장관 또는 예비 장관, 주요 당직자)로 있으면서 의원 한 명 한 명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다가 이번에 한칼을 휘두른 것”이란 평도 나온다. 메이는 41세 때인 1997년 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로부터 2년 후 프런트 벤치로 승격했고 이런저런 자리를 거치며 줄곧 프런트 벤치에 남아 있었다. 이사이 중요 의사 결정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거나 참여하면서 사람이면 사람, 정책이면 정책 모두 속속들이 알게 됐다는 의미다.

메이는 세계 지도자와 ‘대련’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회동했다. 브렉시트 정지작업이다. 앞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자 탁월한 정치 감각의 소유자로 알려진 니컬라 스터전도 만났다. 연합왕국을 살리겠다는 메시지다.

영국 내에서 여론을 좌우하는 ‘총리문답(PMQ)’에도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도 당수직에 머물러 있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를 “부도덕한 보스”에 비유하곤 목소리를 낮추며 “(부도덕한 보스로) 누군가 떠오르지 않느냐(Remind him of anybody)”라고 했다.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조롱조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바로 마거릿 대처의 모습”이라고 했다.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메이는 그동안 즉석 농담을 즐기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인물”이라며 “이번 건 미리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연습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같은 메이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목회자의 딸(vicar’s daugther)’과 ‘총리가 되겠다는 오랜 꿈’, 그에 따른 집요함과 노회함일 게다. 그의 삶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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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함께 촬영한 어린 시절의 메이 총리. 1956년 성공회 신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중앙포토]

메이는 1956년 영국 남부 이스트본에서 성공회 신부의 딸로 태어났다. 영국 사회에서 성공회 신부는 지식인에 속한다. 주민들에게 뭔가 가르치고 모범이 돼야 하는 인물이다. 메이는 그런 이의 외동딸이다. 늘 주목을 받았고 그래서 행동거지도 조심해야 했다. 썩 부유하지 않았던 가정형편 때문에 공립학교로 진학했지만 공부를 잘해 그래머스쿨(중등학교)을 거쳐 옥스퍼드대에 진학했다. 루터교 목회자의 딸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종교 윤리는 그의 일부가 됐다. 스스론 “진열대에 선 듯했다(on show)”라고 표현했다.

더타임스는 “메이가 총리로 결정된 후 연속으로 두 차례 교회에서 나오는 모습이 사진으로 잡혔다”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 메이의 정치는 이데올로기보단 가치에 기반한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얘기를 할 때 열정으로 빛난다”고 썼다.

정치적 야심은 10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거릿 대처가 등장하기 전이었으므로 여성 총리가 가능하단 생각이 상식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메이는 10대 때 보수당원이 됐다. 당시 친구들은 “키 크고 똑똑하며 패션에 관심 있는 첫 여성 총리가 되겠다고 했다”고 기억했다. 옥스퍼드대 재학 중 대처가 총리가 됐는데, 당시 친구인 패트 프랭클랜드는 “첫 여성 총리가 나왔다는 사실에 메이가 언짢아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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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 마을회의에 참석했을 때(맨 왼쪽). 이미 10대 때 보수당원이 됐다. [중앙포토]

남편인 필립을 만난 건 메이가 3학년 때다. 파키스탄 총리가 된 베나지르 부토(2007년 피살)가 주도한 보수당 디스코 모임이었다. 춤을 같이 췄고 바로 반했다고 한다. 둘을 묶어준 건 정치와 크리켓이었다. 크리켓은 잉글랜드의 전원성을 대표하는 스포츠다. 이 무렵만 해도 필립이 더 정치 기대주였다. 옥스퍼드대 토론클럽인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을 지냈다. 정관계로 가는 발판으로 여겨지는 모임이다.

80년 둘이 결혼했을 때 둘 모두를 아는 사람들은 “필립이 정치를 하고 메이가 뒷바라지할 수 있다”고 봤다. 결혼은 결과적으론 메이가 주도했다. 메이가 미적대는 필립을 향해 “나를 아내로 삼지 않으면 관계를 끝내겠다”고 최후통첩한 후에야 이뤄졌다고 한다. 직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오랜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메이의 나이 27세 때였다. 메이는 당시를 두고 “필립이 나에겐 반석 같은 존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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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남편 필립과의 결혼식.. [중앙포토]

필립이 아닌 메이가 정치를 하게 된 건 86년 런던 남부의 머튼 카운슬 의원이 되면서다. 지방의원이다. 메이는 점차 꿈을 키워 갔고 세 차례 도전 만인 97년 메이든헤드에서 당선되면서 의원 배지를 달았다. 남편 필립은 아내의 정치인으로서의 부상을 경이감을 가지고 지켜봤다. 지인들은 “필립은 다소 내성적이며 예의 바르고 수줍음을 탄다”고 전했다. 현재 필립은 성공한 은행가다. 1조5000억 파운드(약 2244조원)를 굴리는 투자펀드의 고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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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 입주한 메이 총리 부부. [중앙포토]

메이는 보수당 내에서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배지를 단 지 2년 만에 야당이던 보수당의 예비 내각에서 문화·교육을 담당했으며, 2002년 보수당 사상 최초의 여성 당의장으로 지명됐다. 그해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보수당이 고약한 정당(nasty party) 같다”며 개혁을 촉구해 당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함께 보수당을 온건하게 바꾸는 일을 했다. 보수당이 집권한 2010년부터 내무장관으로 재직했다. 20세기 최장수다.

이럴 수 있었던 건 한마디로 일을 잘해서다. 디테일에 강했고 실용적이었으며 옳은 일이란 확신이 있으면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자주 부닥친 이가 오즈번과 고브다. 2010년대 보수당과 자민당 연정 시절 자민당 소속의 닉 클레그 부총리가 메이를 두고 “사담이라곤 없고 너무 냉정하다. 같이 일하는 게 어렵다”고 불평했더니 캐머런 당시 총리가 “나한테도 그렇다”고 위로한 일이 있다고도 한다. ‘어려운 여자’란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영국에선 “브렉시트란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메이가 집권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메이에게 일관된 게 또 있으니 바로 패션에 대한 열정이다. 과감한 패션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인도에 갈 때 패션잡지 보그를 가져가고 싶다고 말한 일이 있다. 표범 무늬 구두를 비롯해 독특한 구두를 수집하는 건 널리 알려진 얘기다. 한 보수당 지지자가 메이와 함께 구두 쇼핑을 한다는 데 1만7500(약 2600만원)파운드를 건 일도 있다. 메이 스스론 “패션 취향이 일종의 아이스브레이커(어색함을 깨는 소재)가 되고 있다”고 했다.
 
[S BOX] 영국 총리의 산실 옥스퍼드대…53명 중 27명 배출

옥스브리지란 말이 있다. 영국을 이끌어가는 두 명문 대학인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를 함께 일컫는다.

그러나 정치 분야, 특히 총리에선 옥스퍼드대가 압도적이다.

테리사 메이 총리도 옥스퍼드대 출신이다. 세인트휴 칼리지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지금껏 53명의 총리 중 27명이 옥스퍼드대 동문이다. 첫 번째 여성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도 옥스퍼드대를 나왔다. 보수당이라면 대개 중산층 이상 출신이란 고정관념이 있다. 부정적 어감의 ‘토프(toff)’로 불리는 이들이다. 메이의 전임자였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도 광의론 토프로 분류되곤 했다. 두 여성 총리는 그러나 중산층 이하 출신이다. 메이 총리 스스로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고 말한 일도 있다. 둘 다 머리 좋은 학생들이 가는 그래머스쿨을 나왔다.

대개 남성 총리들은 명문 자제들이 가곤 했던 사립학교인 이튼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를 졸업하는 코스를 거쳤다. 캐머런 전 총리와 해럴드 맥밀런, 앤서니 이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옥스퍼드대 중에서도 크라이스처치 칼리지 출신이 14명으로 가장 많다.

이에 비해 케임브리지대 출신은 14명이다. 옥스퍼드대의 강세는 20세기 이후 더 두드러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리의 자리에 오른 14명 중에서 4명을 빼곤 모두 옥스퍼드대 출신이다. 고든 브라운 총리가 글래스고대를 나왔고 윈스턴 처칠은 사립 명문인 해로 스쿨을 거쳐 영국 육군사관학교인 샌드허스트를 졸업했다. 제임스 캘러헌과 존 메이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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