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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동아시아인, 처음엔 ‘백인’으로 불렸다

중앙일보 2016.07.23 00:29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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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종의 탄생:
인종적 사유의 역사

교류 초엔 동양의 문화·힘 압도적
서구 힘 커지자 ‘백색’ 개념 바꿔
18세기 부터 ‘황색 피부’로 분류

마이클 키벅 지음
이효석 옮김, 현암사
348쪽, 1만6000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1994년 폐지됨)를 실시할 때 일본인들은 ‘명예백인(名譽白人·honorary whites)’으로 취급됐다. 백인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만약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불행히도 지금까지 실행되고 있다면, 한국인도 명예백인으로 인정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만국립대 외국어학과 교수인 마이클 키벅이 지은 『황인종의 탄생』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13세기 마르코 폴로(1254~1324) 이래 서구 사람이 대체적으로 인식한 동아시아 사람들의 피부색이 원래는 ‘황색’이 아니라 ‘백색’이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서구와 동아시아가 처음 만났을 때에는 서구의 경제력이나 군사력, 문화력이 동양을 압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서구인들은 동아시아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관료제를 부러워했다. 상인·선교사·탐험가 등 서구의 방문자들이 보기에 동아시아는 물산이 풍부하고 문화와 관습이 세련된 고장이었다. 그들은 교류를 바랐고 동아시아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를 기대했다.

서구가 동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슬슬 바뀌었다. 17세기부터 서구인들은 백색을 자신들 피부에 국한시키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걸렸다. 18~19세기부터 서구인들은 동아시아인들에게 ‘황색’이라는 피부색을 부여했다. 스웨덴 박물학자·식물학자 칼 폰 린네(1707~78), 빅토리아 시대 과학자, 인류학자들이 ‘결정’한 색이 황색이었다. 유럽에 인종주의가 뿌리내리면서 동아시아인의 피부색은 ‘황색’으로 굳혀졌다. 저자의 말처럼 “백색은 20세기 초부터 오직 서구인에게만 허용된 개념”이 됐다. 놀랍게도 ‘황색’이라는 피부 정체성은 동아시아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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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잡지 ‘하퍼스 위클리’(1898년)에 실린 독일 빌헬름 2세의 ‘황화(黃禍?Yellow peril)’. 대천사 미카엘이 유럽 각국을 대표하는 여전사들에게 부처와 용으로 형상화된 동양의 위협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시아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당시의 서구 분위기가 읽힌다. [사진 현암사]

졸지에 피부색이 황색이 된 동아시아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중국인들은 대체적으로 환영했다. 황하(黃河)·황제(黃帝) 등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황색은 중국 전통에서 고귀한 색이었다. 오로지 황제만이 황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황색을 반기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과 같은 범주에 묶이는 것을 꺼렸다. 다구치 우키치(田口卯吉·1855~1905) 같은 학자는 일본인들이 ‘덜 노랗다’고 주장했다.

인종주의 시대에 황색은 서구인들이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핵심 개념이었다. 일단 범주라는 게 생기고 세상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힘이 생긴다. 생각과 행동을 구속한다. 피부색은 권력정치·국제정치의 요소가 됐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청일전쟁 말기인 1895년께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를 제기했다. 황색 인종은 잠재적으로 유럽 백인 문명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유럽 열강이 단결하여 황색 인종을 억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동아시아에서도 피부에 입각한 인종주의를 수용하는 함정에 빠졌다. 중화민국 초기의 정치가·학자 캉유웨이(康有爲·1858~1927) 마저도 홍색인(아메리카 인디언)은 사라질 것이라고 봤으며 백인과 황색인이 동등한 국제 질서를 주장했다.

오늘날 황인종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 백인·흑인이라는 표현은 살아 있다. 미국에서 국세조사를 할 때 인종 항목 중에 백인(유럽·중동·북아프리카 혈통)과 흑인은 있다. 하지만 황색인은 없고 아시아인만 있을 뿐이다. 인종은 오늘날 생물학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실은 다르다. 인종주의라는 ‘유령’의 뿌리를 알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황인종의 탄생』은 6개 국어로 된 방대한 문헌을 인용한다. 역사의 미시적인 서술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끌어당길 책이다.
 
[S BOX] 인권 문제로 사라진 용어‘살색’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정의했다. ‘아(我)’는 민족이 될 수도 있고 ‘계급’이나 ‘인종’이 될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을 분열시킨 것은 ‘아’가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 문제였다. 민족보다 계급이 중요하다는 사회주의자들도 있었다. 친일 세력은 백인종에 대항해 일본을 중심으로 황인종끼리 뭉쳐야 한다며 민족을 배반했다.

소위 다문화시대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수입됐다. 인권 문제를 이유로 우리의 피부색이 ‘살색’에서 ‘살구색’으로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19~20세기적 의미의 조선인·한국인이 아니다. 『황인종의 탄생』의 교훈은 우리가 새로운 범주의 그 무엇으로 ‘탄생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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