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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의 발언은 우병우를 감싼 게 아니다

중앙일보 2016.07.23 00:01 종합 26면 지면보기
성공적인 국정운영의 3대 요소는 방향과 수순과 타이밍이다.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이 이쯤 해서 자리를 물러나는 건 정치의 역류할 수 없는 대세이자 방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며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다.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 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란다”고 한 말이 우 수석에게 엉뚱한 기대심리를 불러일으켰다면 곤란하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의 발언은 겉은 나라 안보지만 속은 우병우에 대한 신뢰와 감싸기라는 해석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만일 박 대통령이 이런 중의법을 사용했다면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적절치 못한 어법이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헷갈려선 안 된다. 온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솔직하고 명쾌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어제 청와대 대변인이 박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제대로 잡아 준 건 잘한 일이다. 정연국 대변인은 “대통령의 ‘소명의 시간’ 말씀은 우병우 수석 얘기가 아니다. 국가안보를 지켜야 하는 소명이라는 뜻”이라고 분명히 했다. 바로잡아 주라는 박 대통령의 생각이 대변인에게 전달됐다고 봐야 한다. 우병우 수석은 더 이상 대통령의 보호 속에 숨어 있을 수 없게 됐다.

야당의 사퇴 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집권당인 새누리당도 합세했다. 차기 유력한 당 대표 후보 가운데 한 명인 정병국 의원이 “우 수석은 검찰 인사권에 영향력을 미치는 신분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을 수 없지 않느냐. 대통령에게 부담 주지 말고 결단을 내리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 관례를 깨고 “앞으로 필요하면 우병우 수석을 국회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우 수석에 대한 의혹과 불신, 추궁이 언론에서 야당, 야당에서 집권당의 중심 세력으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다. 우 수석이 집권세력 안에서도 고립되는 형국이다.

이렇게 시곗바늘처럼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면 남은 건 타이밍이다. 지금 상황에선 아무리 빨리 던져도 이르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그만큼 늦는 것이다. 우 수석은 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책임질 수 없다는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이란 자리는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 관두는 자리다. 그래서 칼날 위의 자리라고 하지 않는가. 불공정 의혹을 풍기는 우 수석 아래서 검찰이 아무리 김영란법을 엄정하게 처리한다 해도 당하는 사람은 억울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겠나. 이럴 때 필요한 말이 정무적 책임이다. 정무적 책임을 지고 물러가는 건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무적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수치를 당하는 것이 문제다. 박 대통령은 다음주부터 닷새 휴가를 가게 된다. 국정운영의 새 판을 구상할 것이다. 우병우 수석의 용퇴는 박 대통령이 운동장을 넓게 쓰고 새로운 플레이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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