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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관모가 무거우면 목이 꺾인다

중앙일보 2016.07.23 00:01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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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에 근무하던 2008년과 2009년 서초동 법조타운의 소소한 관심사 중 하나는 그의 상속재산 규모였다. 검찰 선배의 중매로 결혼을 했던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 기흥CC 회장이 2008년 6월 말 별세하면서다. 우병우는 “상속세도 못 내 집이 압류됐는데 상속은 무슨 상속…”이라며 검찰 선후배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물리쳤다.

동료들의 회고. “당시 장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데다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우병우 처가가 상속세 문제 때문에 난감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우병우 처가는 2011년 3월 서울 강남역 인근 빌딩을 넥슨에 1300억원대에 팔면서 상속세를 납부하고, 각종 근저당 설정을 해제할 수 있었다. 최근 문제가 된 우병우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그와 가족들이 곤란한 처지를 벗어나는 과정에 진경준 검사장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까”에 있다. 우병우가 이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진경준의 넥슨 주식 불법 취득 사실을 눈감아 줘 검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의구심의 원천이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우병우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다. 건물 매각 당시 우병우는 전국 검찰 사건을 관할하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있었다. 최근 그에 대한 여론의 집중포화를 감안하면 포괄적 의미의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검찰의 대표적 칼잡이 우병우도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물러나면 희생양으로 전락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결국 사건의 열쇠는 진경준이 쥐고 있는 셈이다. 우병우와 넥슨의 김정주가 일체의 의혹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진경준은 뭐라고 얘기할까. 한 언론매체는 진경준 지인의 말을 인용해 “진경준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검찰 내에서도 “특임검사팀이 어떤 식으로든 질문을 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봐 관심을 가질 만한 진술은 없어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설혹 진경준이 “김정주에게 우병우 처가의 건물을 사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고 말하더라도 입증이 만만치 않다. 우병우가 검찰에서 “사실이 아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고 말한다면? 녹취록이나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는 제3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작은 데다 수사기법상 필요한 통화기록이나 비망록 등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우병우가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 “진경준의 지금 입장에선 우병우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할 이유가 없다. 최대한 형량을 낮추고, 조금이라도 재산을 건져야 하는 상황에서 민정수석을 상대로 굳이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겠는가.” 우병우가 계급장을 떼고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검찰 일각에선 우병우의 버티기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의 데자뷔라는 인식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수사한 검사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지 않았던 것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다. 우병우는 당시에도 “나는 나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법률적으로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다. 우병우가 2014년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됐을 때 ‘강공 드라이브’를 걱정하는 부정적 여론이 나왔던 이유 중 하나다. “400억원대의 재산가가 민심을 제대로 챙길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었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우병우가 균열의 한 틈새를 차지하게 된 것은 운명의 장난치고는 고약하다. 이번에는 민심이반과 함께 레임덕을 부추기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당장 여론은 ‘특권의식과 오만함의 상징’으로 규정하며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검찰 조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제 나보다 다른 사람도 생각할 위치가 된 것 아닌가.

“관모(冠帽)가 무거우면 목이 꺾일 수 있다.” 한때 권세를 누려 봤던 한 법조인의 촌평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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