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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삼국지로 본 사람 경영’ (1) 제갈량

온라인 중앙일보 2016.07.23 00:01
 신하에서 몸을 일으켜 군주를 능가하는 권력과 권위를 차지하는 2인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다 탁월한 처세술과 천운까지 타고난 남다름을 보여준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막강한 2인자들의 자질과 처세와 경쟁력은 어떤 것이었는지 따라가 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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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려면 능력과 충성심에 태도, 즉 신하로서의 처세까지 갖추어야 한다. 제갈량이 그런 인물이다. 사진은 중국 청두의 무후사에 있는 제갈량의 동상. / 중앙선데이

 

앞으로 태자를 도울 만하거든 돕되, 태자가 그만한 그릇이 못 되거든 그대 스스로 성도의 주인이 되어 대업을 이루어주길 바라오.” 촉한 황제 유비(劉備)는 제갈량에게 이렇게 유언한다. 오나라 손권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백제성에서 죽음이 목전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 말에 제갈량은 이마를 바닥에 찧어 피를 흘리고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고굉지신(股肱之臣)으로서 신은 죽기로써 대를 이어 충절을 바치고 애쓸 것이옵니다.”


유비가 죽은 후 촉한은 오직 제갈량 한 사람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권위와 권력은 황제를 넘어설 만큼 막강하였다. 제갈량이 마음만 먹었다면 황제에 오를 수 있는 여건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우선 유비의 뒤를 이어 촉한의 황제에 오른 유선은 당시 열일곱 살에 불과했고, 유비의 아들로 태어난 걸 빼놓고는 아무 경쟁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실로 삼국시대 군주 중 가장 어리석고 아둔한 인물로 꼽힐 정도다.

제갈량, 유랑 영웅을 황제로 만든 책사계의 ‘지존’


반면, 제갈량은 유비가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시절에 책사로 합류해 손권에게서 형주를 빼앗고, 유장에게서 익주를 빼앗고, 조조에게서 한중을 아울러 끝내 떠돌이 영웅 유비로 하여금 한(漢)의 대통을 잇는 명분을 만들어 황제에까지 올린 최고의 능력자였다. 게다가 “성도의 주인이 돼라”는 선황제의 유언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군주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죽는 순간까지 어리숙한 황제를 받드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으며, 끝내 자신을 알아봐준 유비의 지우지은(知遇之恩·자신을 알아봐 주고 잘 대우해준 은혜)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유비의 임종 시 했던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능력과 충성심에 신하로서의 처세까지 탁월

역사상 그처럼 강력한 위치에서 신하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자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고 병들어 죽는 그 순간까지 주군의 땅을 지키기 위해 길바닥 잠을 자처했던 신하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나중에 위(魏)황제 조예가 죽기 직전 사마의에게 자신의 아들 조방을 부탁하면서 “지난날 유현덕이 백제성에서 병이 위중하여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부탁하니, 공명은 죽을 때까지 그 뜻을 받들어 충성을 다했소. 변방의 소국에서도 이러했거늘, 우리 같은 대국에서야 더 말해 무엇 하겠소.”라고 유언했을 정도였다.

원래 조직에서 크게 성공하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능력과 충성심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그런데 능력과 충성심까지는 갖추더라도 처세술까지 갖춘 이는 극히 드물다. 대개의 경우 사심없이 능력이 출중한 자들은 태도가 뻣뻣하고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더라도 이런 사람들은 능력 때문에 꽤 조직에서 오래 가긴 하지만 결정적 자리까지 오르기는 힘들다.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려면 능력과 충성심에 태도, 즉 신하로서의 처세까지 갖추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제갈량은 위대했다. 책략가로서, 리더로서 제갈량의 경쟁력은 더 말을 보탤 필요도 없지만 신하로서 그의 처세 또한 족탈불급(足脫不及·맨발로 뛰어 따라가려 해도 미치지 못할 만큼 뛰어나다)이었다. 실제로 그처럼 막강한 위치에서 더 윗자리를 지향하지 않는 행동은 인간세상에선 상당한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인간적인 심사에서 보자면 조조나 사마의와 같은 심보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쩌면 보통 인간이 도달하는 경지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그의 이 같은 특징이 삼국 중 가장 작은 나라 재상이면서도 천년이 넘도록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 중 한 사람, 그리고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꼽히게 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또 후한 말 ‘한실 부흥’을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한실 부흥’을 위해 한결같이 몸 바친 이는 제갈량이 유일했다. 이런 점 때문에 『삼국지』는 제갈량 이야기라고 이름을 바꾸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의 비중이 막강하다. 오직 신하로 살다가 신하로 죽은, 황제보다 막강했던 2인자의 ‘신하로서의 처세’는 그래서 한 번 살펴볼만하다. 위대한 신하의 얘기는 위대한 정복자의 얘기보다 더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제갈량은 유비가 삼고초려하여 모셔오기 전에도 워낙 천하기재로 꼽히던 터였다. 그래서 그의 신하로서의 출발점은 보통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그의 신하로 사는 전략도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바로 이런 점들이다.

첫째, 실로 신하로 성공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은 자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주군을 제대로 만나는 것이다. 신하로 출발하는 모든 사람은 이 제일원칙을 폐부에 새겨놓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제갈량과 유비의 만남은 제갈량이 위대한 신하로 가는 첫 걸음을 제대로 떼게 한 사건이었다.

『삼국지』의 배송지 주석에선 오나라의 가장 큰 신하인 장소(張昭)가 제갈량을 오주 손권에게 추천했지만 제갈량이 거절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제갈량은 “손권의 도량을 보면 내 재능을 인정할 수는 있어도 충분히 펼치게 할 수는 없다”고 거절 이유를 밝힌다.
 
주인을 고르고 ‘밀당’할 줄 아는 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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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도> 중 ‘ 삼고초려’의 일부. 제갈량이 지도를 가리키며 ‘ 천하삼분지계’를 설명하고 있다. / 조선만화박물관 제공

그리고 제갈량의 장인 황승언은 당시 형주태수였던 유표와 동서지간이었다. 그는 처가를 통해 막강한 형양의 인맥과 닿아 있었고, 형양 지역에서 워낙 유명한 선비였기 때문에 그가 원하기만 하면 유표 정부에서도 요직을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유표 밑으로 출사하지 않고, 심심산골 융중에 틀어박혀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일할 기업을 고른다.

그는 평소 자신을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재상인 관중과 명장 악의에 비유했다고 전한다. 적당히 관리로 출발해 사는 게 아니라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겐 누가 주군이 되느냐가 중요했다. 최소한 패왕의 자질을 갖춘 주인이어야 했다.

그리고 천하의 유비가 그의 융중 초려를 세 차례나 방문한 뒤에야 얼굴을 내밀었을 만큼 도도하게 ‘밀당’을 한다. 세 번째로 찾아온 유비를 낮잠을 잔다는 핑계로 반나절이나 기다리게 했을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그가 유비를 만나 처음 한 말은 바로 “먼저 장군은 어떤 뜻을 세우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따를 수 있는, 자신과 뜻이 맞는 주인을 골랐던 것이다. 그리고 유비의 대답을 다 듣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펼쳐 보인다. 이는 중국 역사에서도 최고의 책략 중 하나로 꼽히는 계책이다.

이에 자신보다도 스무 살이나 많은 유비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울면서 청하자 비로소 몸을 일으킨다. 자신의 계책에 감격해 울음을 터뜨리는 주군이야말로 자신이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는 대지가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유비의 강산은 울어서 얻은 것’이라는 속담도 있을 정도로 유비의 ‘울음 경쟁력’은 도통한 경지였으니 ‘유비표 울음’의 승리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유표에게 의탁해 신야라는 궁핍한 촌구석에서 객장을 하는 유비의 신하가 된다. 요즘으로 치자면, 울트라 수퍼 S급 인재가 재벌 대기업을 마다하고 핵심기술도 없고 주인의 명성만 드높아 조조 같은 감당 안되는 적에 둘러싸인, 미래가 불투명한 중소기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으로 그는 유비 진영엔 없던 자신의 핵심 역량을 투입해 기존의 조직과 합쳐 최고의 시너지를 올리는 인생을 살게 된다.

자기의 기량을 충분히 펼 수 있는 주인을 만나는 것, 그것이 신하로서 제갈량 성공의 제일비결이었다.

둘째로 복종과 충성의 경쟁력도 궁극의 경지였다. 제갈량은 유비의 신하가 된 후 철저하게 군주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고,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오직 반 보 앞에서 끌고 간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계획한 길로 이끌어 끝내 성취해낸다.

유비는 때때로 남들 보기에도 어처구니없는 짓을 많이 했지만, 제갈량은 한 순간도 유비를 비판하지 않고, 우격다짐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는 한편, 원래의 목표에서도 결코 벗어나지 않는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사실 유비는 ‘착한 유비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온갖 속 터지는 짓을 다했다. 제갈량은 융중의 초려에서부터 천하를 삼분하여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는 방법만이 유비가 자기 땅을 가지고 천하를 호령하며 망해가는 한실을 붙들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유비가 취해야 할 땅으로 유표의 땅인 형주, 유장의 땅인 익주를 꼭 집어 지목했다. 이에 유비는 울면서 ‘꿈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통사정했다.

당시 유비는 유표 밑에서 객장(客將)으로 있었고, 유표는 병들어 후계를 걱정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후처 소생의 유종이 아닌 전처 소생의 장남 유기로 후사를 잇고 유비에게 그 뒤를 봐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에 제갈량은 유비에게 위기에 빠진 형주를 취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유비는 “같은 종친의 땅을 뺏을 수 없다”고 우기다 결국은 유표 후처 일당의 계략으로 유종이 형주의 주인이 되고, 곧바로 조조에게 땅을 들어 바치는 일을 당하고야 만다.

이는 유비 집단 최대의 위기였고 마침내 오갈 데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유비는 형주로 쳐들어온 조조에게 쫓겨 강릉으로 피란을 가면서도 10만 명이나 되는 피란 백성들을 데리고 간다고 고집을 부리며 미련을 떨고 천천히 가다가 당양에 이르러 조조군에게 박살이 난다. 그 결과 이젠 정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주군을 반 보 앞에서만 끌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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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와 제갈량이 넘나들었던 험준한 관문인 쓰촨성 검문각. 제갈량은 유비의 신하가 된 후 철저하게 군주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춘다. / 중앙포토


이때 유비는 제갈량이 제시하는 최선의 방책을 듣지 않았고, 실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제갈량은 유비가 싫다고 하는 일은 추진하지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형주를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서도 유비의 뜻을 따랐고, 먼저 강릉으로 가라는 청을 거절하는 유비를 위해 원병을 청하라며 관우를 공자 유기에게 보내고, 자신도 원병을 청하기 위해 달려갔을 뿐이다. 또 오갈 데 없게 된 유비를 위해 동오의 손권에게로 달려가 협상을 벌여 연합군으로 끌어들이는 등 군말 없이 유비가 어질러놓은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한다.

제갈량의 진정한 경쟁력은 단지 수습만으로 끝내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살려내 역전을 이룬 기술이다. 그는 적벽오병으로 조조와 손권의 군사들이 치열한 일전을 벌이는 동안 자신의 장수들을 풀어 말과 병기 등 전리품을 챙겨 비어있는 창고를 넘치도록 채웠고, 주유가 이겨놓은 남군을 가로채고 형주와 양양 등 주요 고을을 차고 들어가 유비를 성의 제일 윗자리에 앉혀버려 동오의 주유와 손권의 속을 뒤집어 버린다.

그는 서천을 얻는데 일등 공신, 또 다른 유비의 절대모사였던 방통과는 친한 친구사이였다. 그는 방통을 유비에게 천거하기도 했다. 그런 방통이 서천에서 전투 중 전사한 것을 예감하고 슬피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군께서 오른팔을 잃으셨구나.” 그에게 방통은 자신의 친구가 아니라 주군의 오른팔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제갈량은 주군의 이익이 되는 일에 대해선 도덕적인 갈등조차 하지 않는다. 제갈량에게 생각과 판단의 원천, 그리고 모든 질서의 중심은 오직 주군의 이익이었다. 개인의 체면과 도덕 같은 것은 애당초 없는 물건 취급을 한다.

유비가 서천을 차지한 후, 동오의 손권은 “이제 형주를 돌려 달라”며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을 사자로 보낸다. 그러나 제갈량은 유비와 짜고, 마치 돌려줄듯하면서 돌려주지 않는 연극을 벌인다. 그리고 이를 눈치 채고 형이 다시 서천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자신은 지방순찰을 핑계로 성도를 떠나버린다.

그는 비정한 일에도 기꺼이 참여한다. 관우가 동오 손권의 손에 죽임을 당한 뒤, 유비가 이를 구원하러 가지 않았던 양자 유봉을 죽이려 하자 말리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일 수 있는 계책까지 일러준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유봉이 살아 있을 경우 유비의 후사를 잇는 데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제갈량이 미리 제거한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이 같은 제갈량의 ‘주군 절대주의’는 방통과도 다른 것이었다. 방통은 익주로 들어간 이래 이 땅을 얻기 위해 유비가 극구 말리는데도 유장을 죽일 음모를 꾸며 일단 실행에 들어간다. 나중에 유비가 이를 말리고 야단을 치자 크게 한숨을 내쉰다.

또 부수관을 얻고 기뻐하는 유비를 향해 “종친의 땅을 빼앗고 즐거워하는 것은 어진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방통은 주군 유비를 대함에 있어서도 여전히 강한 자아를 유지하고 유가적 원칙론을 들먹인 데 비해 제갈량은 유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언제나 ‘절대 주군’의 원칙을 깨지 않는다.

(다음호에 계속)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매주 칼럼 ‘양선희의 시시각각’을 연재하는 중이다. 2011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래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여류(余流)삼국지』(메디치 미디어), 『카페 만우절』(나남) 『5월의 파리를 사랑해』(문예중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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