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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보드에 가야금 넣고 미인도 새긴 이 남자

중앙일보 2016.07.21 00:45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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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중인 가야금 서프보드의 소리를 테스트하는 박철우 트루팍 스튜디오 대표. 그는 “서프보드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한국은 파도가 비교적 낮아서 서프보드의 락커(휘어짐)가 직선에 가까워야 해요. 그만큼 보드를 만들 땐 바다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죠”

한국형 서프보드 제작 박철우씨
미국 유학 중 서핑 매력에 눈떠
가야금 연주도 가능한 보드 제작 중
하나하나 수작업 완성까지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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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조선 후기 화가인 신윤복의 대표작 미인도를 한지에 그려서 서프보드 위에 입혔다.

박철우(38) 트루팍 스튜디오 대표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서프보드 셰이퍼(제작자)다. 19일 경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자 문앞에 세워진 서프보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2m 남짓한 흰색 바탕의 보드에는 조선 후기 화가인 신윤복의 미인도가 그려져 있었다. 박 대표는 “이틀 동안 한지에 미인도를 직접 그려서 보드에 입혔다”며 “실제로 서프보드에 무늬를 새길 때도 로고 페이퍼라고 부르는 한지를 쓴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박 대표가 서프보드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유학 시절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처음으로 서핑하는 걸 봤어요. 조각을 공부하다 보니 유선형의 서프보드가 가진 아름다움에 꽂혔죠.”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서핑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재료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해외 사이트와 원서를 보면서 독학으로 서프보드 만드는 법을 익혔다”며 “수집한 자료들을 인터넷에 공유하면서 서퍼들 사이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프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나무 뼈대를 넣은 스티로폼을 깎아 모양을 만든 뒤 유리섬유로 코팅을 하는 데 완성까지는 20일가량 걸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문이 거의 없었지만, 올해는 동해안을 중심으로 서핑 붐이 일면서 현재 5개의 맞춤형 서프보드를 제작 중이다. 그는 “자기 스타일에 맞는 맞춤형 서프보드를 가질 수 있는 데다 비용도 수입품의 절반인 100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전통문화와 서양의 서핑을 결합한 각종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가야금 연주를 할 수 있는 나무 서프보드를 제작 중이다. 이를 위해 경북 고령에 있는 우륵박물관을 찾아가 가야금 명인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동양미술 수업을 들으려고 책을 보는데 350페이지가 중국, 90페이지가 일본이었고, 한국에 관한 내용은 겨우 5장뿐이었다”며 “서양 사람들에게 익숙한 서핑을 소재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달에 가야금 서프보드가 완성되면 국악을 연주하는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문득 작업실이 바닷가가 아닌 경주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아버지가 50년 넘게 전통 엿을 만들었는데, 고향에서 가업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며 “새벽부터 아침까진 1층 공장에서 엿을 만들고 오후에 2층 작업실로 올라와 서프보드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만의 서핑 문화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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