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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황룡사 9층탑 미스터리

중앙일보 2016.07.21 00:09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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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20일 오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흥미로운 강연이 열렸다. 경북대 장동익 역사학과 교수가 황룡사 9층탑이 불탄 날짜를 밝혀냈다. 신라의 랜드마크였던 황룡사탑이 몽골의 침공을 받아 사라진 때는 1238년. 하지만 소실된 날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학계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는 겨울철(冬)로, 조선 초기에 고려시대를 돌아본 『고려사』에는 윤사월(閏四月)로 기록됐다.

장 교수는 역대 경주 수령의 명단을 정리한 『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황룡사가 불탄 날이 ‘10월 11일‘로 나와 있다. 장 교수는 이를 서양 그레고리 역법으로 환산했다. ‘11월 25일’이다. 강연에 앞서 전화로 만난 그는 걱정을 털어놓았다. “고려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서도 황룡사탑을 복원하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가요.” 그는 요즘 『고려사』 여러 판본과 자료를 비교·검토하며 고려시대 주요 일지를 바로잡고 있다.

황룡사는 신라 호국불교의 보루였다. 645년 선덕여왕 때 완성된 9층 목조탑은 그 절정을 보여주었다. 높이가 80m 전후로 추정되는, 경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나라를 지킨다’는 탑의 상징성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졌다. 벼락·지진 등으로 네 번이나 무너졌지만 그때마다 정성을 기울여 다시 일으켜세웠다. 몽골이 1238년 고려 임시왕도였던 강화도를 압박하면서도 경주까지 내려와 탑을 불태운 것은 치밀한 심리전이었다. 고려인 마음의 중심을 무너뜨린 것이다.

최근 경주보문단지에 황룡사탑을 본뜬 높이 68m의 복합문화공간 중도타워가 선보였다. 원형을 되살렸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고찰(古刹)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황룡사탑을 극세밀화로 재현했던 펜화가 김영택씨는 “일부 글 자료, 한옥 기본설계를 토대로 그림을 그렸지만 실제 건물은 차원이 다르다. 고층 목조건물은 현재 기술로도 짓기가 어렵다”고 했다.

황룡사 복원은 지난한 일이다. 경주시는 황룡사를 포함한 옛 경주 유적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많은 돈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문화재 전문가들은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세계문화유산 경주의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호국불교의 모태가 갈등의 씨앗이 된 모양새다. 일단 사료부터 하나라도 더 챙길 때가 아닐까 싶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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