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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우환 위작사건’의 행간읽기

중앙일보 2016.07.20 00:41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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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조영남 사건’ 이후 잇따른 논란
소장가·작가·국민까지 피해 봐
엉뚱한 음모론과 국격 논란보다
논리와 이성으로 진상 규명돼야

미술비평가

한국 미술계가 아프다. 위작 때문이다. 해묵은 천경자의 진위 논란이 그의 죽음과 함께 유족들의 문제제기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더니 현역 최고의 작가라 하는 이우환이 다시 문제다. 위작을 만들었다는 범인들이 잡혀 법정에 서 있고 과학적 분석결과가 위작임을 입증하고 있다. 당연히 경찰은 위작이라고 하는데 작가인 이우환은 진짜라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모두 다 입장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위작은 단속되어야 하고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한 범죄라는 사실에는 경찰도, 작가도 동의할 것이다.

사실 위작 사건의 일차적인 피해자는 우리 국민들이다. 위작인 줄 모르고 감동과 문화를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작품을 구입한 소장가다. 문화적·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셋째는 작가다. 수준 낮은 조악한 위작이 그의 예술적 성과를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사 김정희는 위작에 대해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실사구시를 원칙으로 금석고증학에 정통했던 그는 치밀하게 다른 그림과 각종 문헌을 비교해 진품을 가려내고, 이를 토대로 그림을 논했다. 위작은 미술의 역사를 해치는 암적 존재로 여겼다.

이번 사건 역시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냉정한 사법적 판단에 근거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동시에 예술적인 논의와 평가를 통해 이우환의 예술세계는 그대로 존중되고 동시에 새롭게 가치를 발견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을 살펴보면 예술적인 논의는 이미 사리지고 진위 문제만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우환이 경찰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는 과정에서 마치 대형 사건의 주범처럼 언론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은 분명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었다. 이우환은 위작을 만들라고 지시, 즉 교사하거나 유통에 관여한 범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 사건의 주모자처럼 연일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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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그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평소 조용하지만 분명한 논리로 자신의 그림과 미학을 이야기해 오던 이우환이다. 그래서 ‘선비’ 같다던 그가 이번 위작 사건에는 그 특유의 냉정함을 잃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작가 감정을 거치지 않고 경찰이 위작이라고 발표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경찰로서는 2015년 초 수사에 착수할 때부터 ‘위작은 없다’ 또는 ‘최소한 작가가 본 작품 중에는 가짜가 없다’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와 범인을 확보하기 전에는 섣불리 작가에게 보여줄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한 사람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다가 자칫 ‘멍에’를 질 수 있게 됐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앞으로라도 양측이 이성적으로 대응했으면 한다.

그런데 사건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는 작가와 경찰이 아닌 또 다른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되돌아보면 위작 가능성이 제기되자마자 ‘이우환 죽이기’나 ‘이우환 테러’라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바로 등장한다. 이들은 “미술계 불순세력이 경찰을 이용해 무리한 수사에 착수했으며, 그런 잘못을 무마하려 국과수의 ‘감정불가’를 유도해 위작 수사를 결말지으려 할 것”이라는 소문을 끊임없이 퍼뜨렸다. 이런 음모론과 ‘문화 국격의 훼손’이라는 괴이한 논리가 이들의 무기였다. 이들이 작가와 미술계, 경찰을 끊임없이 충동질한 결과 작가의 진짜라는 의견과 경찰의 위작 의견이 대립해 사실상 진위 판별이 불가능해진 현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작가의 명예회복과 진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면 이들 세력을 규명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사실 국가 또는 공권력이 예술, 특히 미술 분야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사건과 같은 추문이 국가의 예술 통제와 간섭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위작 문제는 작가와 경찰이 다툴 일이 아니다. 이미 사법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나 예술가라고 해서 실정법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위작을 만들어 유통시켜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면 분명 엄벌에 처해야 한다. 한국에서 위작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과도한 사회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 처벌이 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미술품의 진위를 보다 이성적으로 가리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공개적으로 논할 때는 학문공동체에서 인정하는 개념과 용어를 사용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기존의 견해나 학설을 반증하거나 독창적이고 새로운 주장을 펴려면 분명한 학문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인상이나 느낌, 아니면 감성적인 언어로 혼선을 가중시키고 사람들을 호도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엉뚱한 음모론이 나돌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미술계의 안목과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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