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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어린이 앞에 무릎 꿇은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중앙일보 2016.07.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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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제공]


지난주 인터넷을 훑다가 한 장의 사진 앞에 얼어 붙게 되었다.
시상식 장면이었다.

그런데 상을 주는 어른이 무릎을 꿇고 어린이와 마주하고 있었다.
상을 받는 어린이는 배시시 웃고 있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 사진이었다.
사진에서 떠날 수 없었다.
사연이 궁금했다.

무릎을 꿇은 어른이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었다.
그래서 최원장과 통화를 했다.

겸연쩍은 듯 그가 들려준 사연은 이랬다.

“그게 얼떨결에 그렇게 된 겁니다. 지난달 15일, 우리 들꽃 포토 에세이 공모전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수상자 대부분이 중·고등학생 이었습니다. 요즘 학생들 유난히 키가 크잖아요. 게 중에 아주 작은 초등학교 1학년이 껴있었습니다. 언니와 함께 장려상을 받게 되었는데 언니가 등을 떠밀었어요. 혼자 올라온 그 아이는 주눅든 듯 쭈뼜쭈뼛 했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 겁니다. 처음엔 그 아이가 흠칫했습니다. 겁나서 그렇니?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고선 배시시 웃더라구요.”

사진을 확대해서 자세히 보고 싶었다.
국립생태원 홍보담당자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사진뿐만 아니라 다음 장면 사진까지 보내왔다.
그 어린이와의 기념사진 장면이었다.
역시나 최원장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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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제공]

무릎을 꿇은 어른, 이는 생물학적인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오래전 찍은 최원장의 사진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통화 후 지난 사진 파일을 뒤져 최원장의 사진을 찾았다.

201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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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연구실 문에 색종이를 오려 만든 시계가 붙어 있었다.
삐뚤삐뚤한 손 글씨로 ‘할아버지 선생님께’라 적혀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보자마자 저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진 작품(?)이었다.
제자의 딸이 만들어 준 것인데 십 여 년째 그 자리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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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벽 가득한 책장엔 열 댓 개의 포스트잇이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책을 빌려간 학생들이 스스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책이름, 날짜, 빌려간 이가 적혀 있었다.
그의 책은 ‘너와 나의 관계를 넘어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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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상 뒤 벽은 연꽃과 나비와 벌이 그려진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의자 바로 위 천장엔 기러기 모빌이 달려있었다.
그것의 용도를 물었을 때 최원장이 앉은 자리에서 손을 뻗어 줄을 당겼다.
기러기가 날개 짓을 했다.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기러기 모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멕시코에서 온 연구원이 원주민이 만든 거라며 가져다 준겁니다. 아무렇게나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방향을 재봤더니 각도가 신기하게도 딱 멕시코 방향이었습니다. 그 연구원과 서로 신기하다며 한 참 웃었죠.”

기러기 모빌의 줄을 당기며 설명하는 그의 눈빛과 표정이 묘했다.
어른인데도 천진난만한 애 같은 행복함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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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날의 인터뷰 주제가 ‘행복’이었다.
최 원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행복은 “방황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방황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의아했다.
동물생태학의 권위자답게 침팬지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서부 아프리카의 침팬지는 견과류를 돌로 깨 먹습니다. 어미가 깨트리면, 새끼도 따라서 하죠. 서툰 새끼는 실수 연발이죠. 그래도 어미는 말없이 지켜볼 뿐입니다. 무한 인내심으로 지켜보는 겁니다. 그럼 어느 순간 자식이 그걸 터득합니다. 야생의 세계에서 이런 고통과 방황이 중요합니다. 새끼들은 그걸 통해서 성장합니다. 인간의 세계도 마찬가지죠. 우리에겐 ‘아름다운 방황’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방황’이라는 말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당시 심한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둔 내게는 남다른 위로의 말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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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당신의 방황을 들려줬다.
수많은 방황을 겪은 만큼 꽤 긴 이야기였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의예과를 두 번 떨어지고 2지망으로 서울대 동물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니 전공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시와 사진 같은 데 관심이 더 많았다. 3학년 때 직함이 무려 9개나 될 정도로 오지랖이 넓었다. 사무실 출근하듯 다닌 학교였다. 이 모두 갈 길을 찾지 못한 방황이었다. 4학년 때, 유타대 조지 에드먼즈 교수와 엿새 동안 전국을 돌았다. 그 미국인 교수는 관광도 안 하고 하루살이만 채집했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교수 앞에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물었다. 교수는 종이를 꺼내 미국 대학 목록 9개와 교수 이름을 써줬다.

유학을 결심했다. 아버지에게 1년치 학비만 대달라고 부탁했다. 죽더라도 거기서 죽겠다는 말까지 했다. 자식 넷 중에서 누구 하나를 택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면 적어도 나는 아니라는 게 아버지의 답이었다. 가슴에 못이 박혔다. 그랬던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의 일부를 떼 내게 줬다. 나는 출국하며 김포공항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미국땅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죽어라 공부했다. 돌아보면 그런 고통과 방황이 나를 성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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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기자가 왜 미국인 교수에게 무릎을 꿇었는지 물었다.

“저는 자연 속에 잠길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걸로 밥 먹고 살기는 불가능한 줄 알았죠. 그래서 방황했었죠. 그런데 정확하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 겁니다. 내겐 길이었고 그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방황 속에서 찾은 길,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글 경험을 예로 들었다.

“비 맞는 걸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그런데 열대에 가면 다릅니다. 비를 맞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안경에 얼룩이 져도, 속옷까지 흠뻑 젖어도 상관없이 그냥 너무 행복합니다. 뱀 지나가죠, 개미핥기 나오죠, 개구리도 튀죠, 나비도 날죠. 정신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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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개미핥기, 개구리, 나비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는 동작이 스쳐 지나갔다.
양손을 귀 뒤에 올리는 장면이었다.
마치 목도리도마뱀이 연상되는 동작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장면의 사진을 놓쳐버렸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 장면만 한번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손을 올리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목도리도마뱀이 연상되었습니다.
포즈를 한번 취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짓궂은 요청에도 씩 웃으며 최원장이 포즈를 취했다.
그러면서 최원장이 한마디 했다.
“신문을 보면서 왜 다들 이상한 포즈로 찍혔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러고 있네요”라며 웃었다.

그 표정, ‘고통스런 방황’을 ‘아름다운 방황’으로 여기게 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3년 전 그의 사진을 본 후, 다시 시상식 사진을 보았다.
배시시 웃는 어린이를 마주한 최원장도 활짝 웃고 있었다.
주눅든 아이를 웃음 짓게 한 그 웃음이었다.

3년 전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누군가의 에드먼즈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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