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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가습기살균제 사태, 정부는 왜 사과하지 않나

중앙일보 2016.07.14 00:03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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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2011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불거진 지 5년 만에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다. 피해자들의 가슴 먹먹한 사연을 접하면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왜 정부는 사과하지 않는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가 나온 건 지난 4월18일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로부터였다. 여드레 뒤 홈플러스 김상현 신임대표가 허리를 숙였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는 5월20일에야 아타 사프달 옥시한국법인 대표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문제가 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으로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만든 SK케미칼은 아직도 잠잠하다.

그리고 바로 정부다. 산업부는 2007년 고시를 제정하면서 사람 폐에 들어가는 가습기살균제를 안전검사대상 공산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자 업체들은 안전마크를 받기 위해 자사의 가습기살균제를 세정제로 신고했고, 산업부는 국가통합인증마크인 ‘KC마크’를 붙여줬다. 산업부는 당시 세정제 검사 대상은 염산·황산 등이었지 PHMG는 검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엄연한 살균제에 세정제 기준을 적용해 놓고도 ‘법대로 한 것’이라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90년대 말에 PHMG의 유해 가능성이 알려져 이 물질을 금지시켰는데, 산업부는 폐 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 역학조사가 이뤄지던 2011년에도 가습기살균제 신제품 2개에 안전마크를 부여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SK케미칼이 97년 ‘항균제’용도로 PHMG 제조 신고를 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흡입독성실험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당시의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 규정’은 ‘환경에 직접 노출돼 사용되는 경우 독성검사를 위한 추가 자료를 요청하도록’ 돼 있다. 환경부는 자료를 요청하지 않은 채 유해성 심사를 방치했다. 그런데도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의료계조차 (폐질환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는)예상을 못해서 뒤늦게 발견된 것”(6월), “이 사건은 장삿속만 챙기는 상혼과 제품 안전관리 법제 미비가 중첩되면서 생긴 대규모 인명살상사고”(5월)라며 직접적인 사과를 피했다.

소비자가 가장 믿은 건 정부였다. 어려운 화학물질이 뭔진 몰라도 정부가 어련히 알아서 철저히 검사하고 안전마크를 붙였겠거니 믿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둬야 할 정부가 자국민의 ‘대규모 인명살상사고’앞에 과거 법령을 운운하며 발을 뺀다면 정부는 왜 필요한가. 적어도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있어 정부는 기업보다 나은 게 없다.

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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