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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저도 진짜 이름 생겨요?”…투명인간으로 산 11세 서현이

중앙일보 2016.07.13 02:17 종합 14면 지면보기
“이제 저도 진짜 이름이 생기는 거예요?” 작은 반지하 방에 웅크려 있던 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 이름이 없는 이 아이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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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가명)이 모녀가 사는 반지하 방에서 구청 복지정책과 직원이 지난 10일 서현이와 대화하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방에는 선풍기조차 없었다. [사진 강동구청]

아이를 처음 만난 건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9월이었다. 서울 강동구의 후텁지근한 반지하 쪽방. 선풍기조차 없는 그곳에 11세 여자 아이가 엄마(51)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출생신고를 못한 이 아이를 엄마는 ‘서현’(가명)이라고 불렀다.

전 남편 A씨와 이혼 진행 중 임신
딸 친아빠는 다른 남자였지만
현행법은 A씨 친생자로 추정
A씨 연락 끊겨 출생신고도 못해
구청·경찰서, 팔 걷고 모녀 돕기
아직 호적 없지만 초등교 입학 허가

엄마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까지 식당에서 일했다. 엄마가 나가면 서현이는 방 안을 밝히는 작은 소켓 전구 아래에서 뜨개질이나 종이접기를 했다. 학교는 가본 적이 없다. 서현이는 또래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면 놀이터로 갔다.

서현이는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약국에서 처방전이 필요 없는 시럽 약을 사 먹이는 게 전부였다. 다행인 건 약만 먹여도 잘 나아 큰 병치레는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가끔 엄마가 생활고를 견디다 좌절하면 서현이가 먼저 다가가 위로했다. 엄마는 “아이와 같이 세상을 떠날 생각까지 했던 게 너무 부끄러워 다시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다. 서현이는 그렇게 ‘투명인간’으로 10년을 살았다.

서현이 엄마는 2006년 사업 실패로 관계가 소원해진 전 남편 A씨와 이혼했다. 하지만 이혼 절차 진행 중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서현이를 갖게 됐다. 이혼한 지 열흘이 안 돼 서현이가 태어났다. 현행법상 엄마 이혼 뒤 300일 안에 태어난 서현이는 전 남편 A씨의 친생자로 간주된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A씨 호적에 올리거나 서현이가 A씨 딸이 아님을 확인받아야 한다. 그런데 A씨는 이혼 뒤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친생부인의 소’(친생자가 아니라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법원의 문턱은 높았다. 사무실에선 수임료로 500만~600만원이 들 거라고 했다. “매일 식당에서 일해도 한 달에 120만원을 겨우 손에 쥐는 저한테는 감당할 수 없는 큰돈이죠. 손 벌릴 데도 없고 무료 법률 지원 같은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다 제 탓이죠.”

서현이가 열 살이 된 지난해 엄마는 ‘학교를 꼭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주민센터를 찾아 출생신고를 시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친생자 간주의 원칙’이 발목을 잡았다. ‘아버지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며칠 뒤 사회복지사인 나와 93세 이웃 어른이 보증을 서기로 하고 출생신고를 다시 시도했다. 인우보증(隣友保證)제도(병원 출생증명서가 없어도 보증인 2명이 있으면 출생신고를 가능케 한 제도)를 활용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친생자 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실패했다.

서현이 모녀를 돕기 위해 강동구청 복지정책과에서 나섰다. 모녀의 상황은 열악했지만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공식 지원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발로 뛰며 방법을 찾았다. 후원물품을 처음 전달한 날 서현이는 물건을 보고 “평생 먹어도 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출생신고와 학교 입학을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강동경찰서 한정일 경위가 도왔다. 비록 출생신고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12일 인근 초등학교에서 서현이의 입학을 허가했다. 학교 측은 서현이의 학습 능력을 고려해 적당한 학년으로 편입시킬 계획이다.

“그동안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게 후회됩니다.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서현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기사는 서울 강동구청·강동경찰서와 서현이 모녀를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청 소속 이푸르니(32) 통합사례관리사(사회복지사)의 시점에서 작성했습니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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