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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⑩ 여백은 사유와 명상의 공간

중앙일보 2016.07.12 13:07
어린 시절 얘기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림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입니다. 둘째는 명암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도화지를 빈틈없이 꽉 채워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빈 곳이 있으면 미완성이라고 감점을 받습니다.

우리의 미술교육이 빛과 형태, 면을 중시하는 서구의 전통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정신사는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이나, 르네상스 시대 미술작품을 보면 매우 사실적입니다. 실제와 똑같이 묘사하기 위해서 미술작품에 수학과 과학의 원리를 적용했습니다. 황금비율과 원근법이 발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화가들은 어떻게 하면 실제와 똑같이 그릴 수 있을까에 집착했습니다. 한 때 사실성은 좋은 그림을 판단하는 잣대가 됐습니다.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체비례를 연구하기 위해 무덤을 파헤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서양은 형사(形似), 동양은 신사(神似)

카메라가 발명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삼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습니다. 바늘구멍의 원리를 통해 반영되는 이미지를 본 떠 그림을 그렸습니다. 오늘날 카메라의 원조입니다. 그런데 사진은 부메랑이 되어 화가의 생계를 위협하게 됐습니다. 실제를 똑같이 재현하는 카메라가 있으니 화가의 붓이 무용지물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화가들은 재현의 전략을 수정하게 됩니다.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느낌까지 그림에 담으려 했습니다. 인상파가 등장하게 된 것도 사진의 영향이 큽니다. 이때부터 그림은 구상에서 추상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동양미술은 출발부터가 다릅니다. 사실성보다 관념적인 정신세계를 중시합니다. 세세한 부분적인 묘사는 생략합니다. 추상성을 강조합니다. 선 위주로 그리기 때문에 여백의 공간이 많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미 기원전부터 추상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학자 유안(劉安 B.C.179?~B.C.122)은 그의 저서 <회남자(淮南子)>에서 ‘근모실모(謹毛失貌)’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림의 핵심은 ‘심상(心像)’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밝은 달빛에서는 멀리 바라볼 수 있어도 잔글씨를 쓸 수 없으며, 안개 자욱한 아침에는 잔글씨를 쓸 수 있어도 멀리 바라볼 수 없다. 심상을 벗어나면 그림 그리는 사람은 터럭 하나에 힘쓰다가 그 모습을 잃는다. 활 쏘는 사람은 작은 것을 겨누고 큰 것을 버린다.’

형사(形似)는 동양미술에서 사실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상대되는 개념으로 ‘신사(神似)’가 있습니다. 형사와 신사는 재현과 표현과도 통하는 개념입니다. 신사는 ‘그림에 마음을 담는다’는 뜻입니다. 전통적으로 서양화가 형사를 중시했다면 동양화는 신사에 방점을 둡니다. 송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인 소식(소동파)은 “형사로 그림을 논하면 그 식견이 아이들과 다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미술이 형사를 소홀하게 다룬 것도 아닙니다. 형사가 화가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훈련 과정이라면 신사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완성단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수묵산수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송나라의 장조는 ‘외사조화, 중득심원(外師造化, 中得心源)’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밖으로는 조화를 배우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에서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리는 대상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대상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마음에서 나오는 이미지를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관과 객관, 표현과 재현의 조화를 뜻하는 이 말은 오늘날까지 동양화 창작의 근본 원리가 되는 명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산수화는 면보다 선이 강조됩니다. 선 위주의 그림은 여백을 낳습니다. 먹번짐으로 면을 채우기도 하지만 선이 중심이 됩니다. 붓도 동양과 서양이 다릅니다. 서양의 붓은 뭉툭하고 넓어서 선보다는 면을 그리는 데 적합합니다.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붓은 끝이 뾰족합니다. 글씨 쓰는 붓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글씨와 그림은 하나’라는 ‘서화동체(書畵同體)’의 전통 때문입니다. 한자는 상형문자입니다. 글씨 자체가 추상적인 그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그림도 잘 그린다’고 말합니다. 서양에는 없는 문인화인 수묵산수화가 발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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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은 선재도 풍경입니다. 뿌연 해무가 밀려와 멀리 있는 산이 허공에 떠 있는 섬처럼 보입니다. 텅 빈 하늘에 갈매기 두 마리가 날고 있습니다. 갈매기의 날갯짓이 울림이 되어 넓은 여백을 채웁니다.

여백은 버려진 공간이 아닙니다. 사유와 명상의 공간입니다. 또 배경이 비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전경은 돋보이게 됩니다. 산수화의 여백에는 주제를 강조하는 역설의 미학이 있습니다. 풍경사진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늘·구름·안개·운해 등이 여백의 소재가 됩니다. 또 기술적으로 여백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아웃포커싱이나 셔터타임을 길게 하는 장노출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사진의 여백은 공간적인 깊이감을 더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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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는 경남 울산 연화산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일대의 새벽 풍경입니다. 해가 떠 오르자 살구빛으로 물든 운해가 산 허리에 드리워집니다.

아웃포커싱·장노출로 여백 만들 수도

동양화의 여백은 노장사상의 영향도 큽니다. 무(無)를 중시하는 노자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대영약충(大盈若沖)’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크게 가득 차 있는 것은 마치 빈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노자는 ‘빈 그릇’과 ‘집’을 예로 듭니다. 그릇과 집의 진정한 쓸모는 가시적인 형체가 아니라 그 형체가 만들어 내는 빈 공간에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도종환의 시 <여백>은 화가는 물론, 사진가도 마음에 두어야 할 여백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여백은 예술도 사람도 아름답게 합니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나무 뒤에서 말없이/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넉넉한 허공 때문이다/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주기중 기자·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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