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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케리, 사드 설명하려 하자 왕이는 듣기조차 거부했다

중앙일보 2016.07.12 02:21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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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올 2월 워싱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왕 부장은 당시 케리 장관의 사드 설명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워싱턴 AP=뉴시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세부 정보를 중국에 제공하겠다고 거듭 제안했으나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설명 들을 필요도 없다”며 거절했다고 베이징 외교 소식통이 11일 밝혔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이 밝힌 뒷얘기
중국의 전략미사일 무력화 우려
사드에 상응한 시스템 갖추려면
막대한 군사·경제적 부담 걱정
중 외교부 “상응 조치 분명히 할 것”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한·미 양국은 사드가 결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중국은 일고의 여지도 없다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왕 부장이 지난 2월 미 워싱턴DC로 가 대북제재 등을 협의할 때 케리 장관이 사드 세부 사항을 설명하겠다고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게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도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도 미국의 정보 제공 제안에 대해 중국은 ‘그런 얘기는 더 꺼낼 필요 없다’며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는 중국이 한·미의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사드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사드의 작전 반경과 레이더 탐지 범위가 중국 대륙을 포함하느냐 않느냐의 기술적 관점보다도 더 큰 전략적 시각으로 사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왜 중국은 설명을 듣기조차 거부할 정도로 완강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을까. 이 소식통은 창과 방패의 균형이 깨진다는 논리로 중국의 시각을 설명했다. 아직 중국의 역량으로는 상응한 시스템을 갖추기 어려운 방패(사드)가 동북아시아에 등장함으로써 중국의 창(전략 미사일)이 무력화되고 이는 힘의 균형을 깨뜨려 중국에 막대한 군사적·경제적 부담을 안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레이더 방향과 탐지 범위 등 기술적 문제는 중요치 않으며 미국의 설명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에 ‘아예 설명도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사드 배치가 동북아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다이쉬(戴旭) 중국 국방대 교수는 “사드 배치로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이어졌던 대국 간 균형이 깨지고 역내 군비 경쟁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이런 입장은 1990년대 이후 미국·러시아 사이에 빚어졌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협정에 얽힌 갈등을 연상시킨다. 미국이 요격미사일의 배치와 숫자를 제한한 ABM 제한 협정을 개정해 본격적인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하려고 하자 러시아는 전력 균형이 깨진다는 이유로 완강히 반대했다. 결국 2001년 조지 W 부시 정권의 탈퇴 결정으로 ABM 협정은 이듬해 자동 폐기됐다.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반발은 11일에도 이어졌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내외신 브리핑에서 “사드를 동북아 지역, 특히 한국에 배치하는 것은 중국의 안보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며 “중국은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상응 조치를 분명히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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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도 사드 배치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의 롼쭝저(阮宗澤) 상무부원장은 관영 신화망 기고에서 “한국이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은 한반도 정세 완화는 물론 한국의 전략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무원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왕쥔성(王俊生) 아태글로벌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은 “돈은 중국에서 벌면서도 중국의 등 뒤에서 칼자루를 들이대는 한국에 이번만큼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선 안 된다”는 강경한 기고를 실었다.

인민일보 해외판 온라인 매체는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공을 들여왔음에도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 양면 외교의 본질에 변화가 없음이 드러났다. 한국에 대한 중국 외교 전략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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