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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존슨…12년 권세 마감한 ‘노팅힐 토리’

중앙일보 2016.07.12 02:18 종합 6면 지면보기
‘노팅힐’. 영국 런던 서부의 지명이다. 많은 이들에게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영화로 익숙한 이름이다.

옥스퍼드 동문, 중산층 이상 출신
경제는 중도우파, 사회는 자유주의
브렉시트 잔류·탈퇴 갈리며 좌절

그러나 영국 정치권에선 다르다. 한때 이곳에 살았던 젊은 보수당 정치인들을 가리킨다. ‘노팅힐 토리(보수당의 별칭)’로도 불린다. 2004년 처음 표현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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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左), 존슨(右)

이들은 이후 10여 년간 보수당 정치를 쥐락펴락해왔다. 대표적 인물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그리고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 등이다. 여기에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입양아 출신인 고브를 빼곤 대개 중산층 이상 출신이다. 사립학교에 옥스퍼드대를 나왔다. 학창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고브와 존슨은 옥스퍼드대 학생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캐머런·존슨·오즈번은 고위층 자제들의 비밀 사교 모임이자 폭음으로 유명한 ‘불링던 클럽’ 출신이기도 하다.

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계에 입문했다. 캐머런이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고 39세 때인 2005년 야당인 보수당 대표가 되면서 이들을 이끌었다. 경제 면에선 중도 우파, 사회적으론 자유주의적 노선을 걸었다. 캐머런 스스로는 ‘현대적 따뜻한 보수주의’라고 명명했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것도 캐머런 정부에서다. 나머지 인사들도 차기 주자 반열에 올랐다.

이들은 사적으로도 대단히 친했다. 캐머런 아들의 대부가 고브였다. 휴가 때도 함께 어울리곤 했다. 오래갈 듯한 이들은 그러나 브렉시트 앞에서 무너졌다. 캐머런의 만류에도 고브가 탈퇴 진영을 선택한 게 시작이었다. 고브는 캐머런에게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궁극적으론 탈퇴 운동의 중심으로 활동했다. 잔류·탈퇴 사이에서 방황하던 존슨을 탈퇴로 이끈 것도 고브였다. 고브는 막판 존슨의 총리 꿈도 좌절시켰다. ‘배반자’란 낙인은 그 역시 총리 경선에서 패배하게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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