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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억만장자인데 백만장자로 썼다고…NYT 기자 상대 5년 소송한 트럼프

중앙일보 2016.07.12 01:37 종합 20면 지면보기
이것은 새로운 짐승이다. 주류 언론이 정조준해서 저격했지만 끄떡도 없다. 묵직한 경고도 신랄한 고발도 통하지 않는다. 추문 들추기나 조롱도 소용없다. 공격받을수록 강해진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 말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를 읽다 보면 트럼프는 푸틴이나 김정은과 유사한 반열이다. 언터처블이란 뜻이다. 심지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그를 길러낸 공화당은 물론 거대 언론사도 어찌 할 수 없는 상대가 돼버렸다는 뜻이다. 언론도 인정하다시피 트럼프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주류 언론이 기여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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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사업가였던 트럼프는 텔레비전 쇼 덕분에 전국적 인물이 돼 거침없는 발언권을 누렸다. 예비선거 과정에서 언론사는 그에게 다른 어떤 후보보다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했다. 외국인 체류자, 이슬람교도, 주류 정치인에 대해 증오 발언을 하면 단순한 뉴스거리 이상으로 대접했다. 비판이나 분석을 동반했건 아니건 과도하게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주류 언론에 감사하는 마음이라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복수를 다짐 중이다. 그는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언론사가 거짓되고 불공정한 보도를 한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명예훼손법을 풀어헤치겠다’고 공표했다. 언론의 거짓 보도에 대응해 소송하기 쉽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법을 풀어헤치겠다’는 표현 자체가 트럼프 특유의 거침없는 말하기 수법을 보여준다. 해석하자면,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수정헌법 1조 판결에 담긴 원칙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1964년 연방대법원은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에서 “공공 사안에 대한 토론은 방해받지 않고, 활발하며,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원리를 채택했다. 이 원리에 따라 정치인과 같은 공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소송하려면 언론이 ‘고의나 부주의한 실수로 진실을 왜곡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트럼프는 바로 이 원칙을 바꾸고 싶은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그 할아비라도 법원의 판례법을 따른 원칙을 변경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막말의 명수인 트럼프를 보고 있다. 또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실현하는 자를 보고 있다. 사정이 이런지라 ‘법을 풀어헤치겠다’는 그의 발언에 대해 다들 그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트럼프의 언론에 대한 복수심을 얕볼 수만 없는 사정이 있다. 그는 2006년 뉴욕타임스 기자가 출판한 『트럼프 네이션』이란 책의 내용 일부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 소송을 벌인 적 있다. 억만장자인 자신을 백만장자로 잘못 서술했다는 것이다. 2011년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트럼프는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남겼다. 모두 워싱턴포스트가 확인한 내용이다. 첫째, 그 자신은 문제의 책을 읽은 적이 없으며 둘째, 기자를 괴롭히려고 끝까지 소송했단다.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다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이다. 그가 위대하다고 믿는 미국이란 결국 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 이전의 미국이다. 공직자나 정치인이 언론의 사소한 오보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으로 소송하는 나라 말이다. 만약 이기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언론사를 파산시킬 수 있다. 질 것 같아도 끝까지 소송함으로써 언론을 괴롭힐 수 있는 그런 ‘위대한’ 나라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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