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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면제 위해 콩쿠르 목 매는 한국 무용계 꼬집었다”

중앙일보 2016.07.12 01:28 종합 22면 지면보기
‘댄스 엘라지’라는 무용 경연대회가 있다. 세계 공연예술 최전선인 프랑스 파리 ‘떼아뜨르 드 라 빌’이 주최해왔는데, 올해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파리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동시에 열렸다. 참가자는 전 세계 50여개국 500여팀. 한국 대회에선 정세영 안무가가 1등, 파리 대회에선 권령은(34·Lee K 무용단원) 안무가가 3등을 차지했다. 춤실력은 세계 넘버원이지만, 작품을 만들거나 안무를 짜는 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던 터라 무용계로선 희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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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령은씨는 한양대-한예종을 거쳤으며 현재는 Lee K. 무용단원이다. 소녀처럼 얌전한 말투였지만 논리적으로 할 말 다 하는 ‘똑순이’였다. 사진을 찍을 때도 과감한 포즈로 앵글을 응시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적보다 더 눈길을 끈 건 권씨의 작품 내용이었다.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콩쿠르에 목을 매는 국내 풍토를 꼬집어 프랑스 관객과 심사위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태 군 면제는 무용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부족한 남성 무용수를 육성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란 찬성론과 “지나친 예술계 특혜”란 반대론이 팽팽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무용 분야의 경우, 정부가 지정한 12개 국제대회에서 2위 이상, 2개 국내대회에서 1위 입상자에 한해 군 면제의 혜택이 돌아간다. 남성도 아닌 여성 안무가는 왜 무용계 금기를 건드렸을까.
 
작품명이 ‘글로리(glory)’다.
“군대 가면 ‘나라를 지키는 영광에 산다’고들 하지 않나. 그걸 패러디했다. 콩쿠르에 입상해 나라 지키는 영광을 면제받는 영광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

파리 ‘댄스 엘라지’ 안무 3위 권령은
국제 콩쿠르서 상 타면 군대 안 가
고난도 동작 반복, 부상 많고 전투적
춤 탐색하고 고민할 시기 놓쳐

그는 콩쿠르를 준비했던 남성 무용수 50명을 인터뷰했다. 10명은 질문지를 만들어 심층 인터뷰했다. 결론은 콩쿠르 우승을 위해선 일종의 매뉴얼이 있다는 것이었다.

“콩쿠르는 5분 안에 승부가 난다. 짧은 시간에 어떻게 결정타를 날리느냐에 집중한다. 심사위원 시선을 붙잡기 위해 돌고 뛰는, 즉 회전과 점프만을 반복 훈련한다. 고난도 테크닉만이 춤의 전부가 된다.”
 
테크닉이 향상되면 좋은 거 아닌가.
“예술성을 위해 고도의 기술력이 요한다는 걸 누가 부정하랴. 하지만 ‘테크닉 절대주의’로만 흘러선 예술이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남성의 연령대는 대략 20세∼27세다. 이 나이엔 기술·체력도 중요하지만 왜 춤을 춰야 하는지, 어떤 게 나와 어울리는지 등 자기 춤을 탐색하고 고민할 시기다. 그걸 놓친 채 테크닉에만 목을 매니 부작용이 커지게 된다.”
어떤 부작용인가.
“어려운 동작을 반복하는데 몸이 성하겠나. 발목·허리 등 부상을 몸에 달고 산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시속 160㎞ 이상 던지면 군대 빼준다는 식이다. 어깨에 무리가 가니 생명력이 짧아질 수 밖에 없다.”
콩쿠르 입상은 여성도 원하는 일 아닌가.
“나도 콩쿠르에 출전한 적 있다. 당연히 상 받고 싶다. 하지만 남자만큼 목숨 걸 듯 덤비진 않는다. 4년간 11번 콩쿠르에 도전한 남자 무용수를 인터뷰했다. 그에겐 ‘군 입대=무용 포기’였다. 인생이 걸린 일이었다. 그들끼린 ‘피 터지는 전쟁’이라고 한다. 당연히 춤이 전투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나중에 후배나 제자를 가르치게 되지 않나. 전투적 무용이 마치 교본처럼 내려오는 구조다.”
구체적으로 작품은 어떻게 구성했나.
“발레 용어중 앙바(en bas·아래로), 앙아방(en avant·앞으로)이란 말이 있다. 이를 작품에선 구호처럼 사용한다. 즉 ‘앙아-방!’이라고 하면 ‘받들어 총!’처럼 느껴진다. 무대에서 한명은 열심히 발레 연습하고, 다른 한명은 군대 제식훈련을 한다. 근데 서서히 두 사람의 동작이 닮아간다. 즉 군대 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무용 연습하는 게 실제 군대에서 하는 총검술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풍자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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