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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무기력한 국가기관, 최저임금위원회

중앙일보 2016.07.12 00:50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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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이 오리무중이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최저임금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고용노동부로 전달됐어야 했다. 그런데 지난달 28일로 만료된 최저임금 결정 법정시한을 보름이나 넘겼는데도 지루한 논쟁만 벌이고 안갯속에서 헤매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이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8월 5일)하기 20일 전인 이달 16일까지는 끝내야 한다. 문제는 경영계와 노동계로 구성된 위원들이 아직 수정안조차 안 냈다는 점이다. 양측은 협상 초기에 제시한 요구안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경영계는 동결(시급 6030원)을, 노동계는 1만원을 주장하고 있다.

원래 협상이란 토론을 거듭하면서 그때마다 수정안을 내고, 접점을 찾아가는 게 순리다. 올해는 그런 과정이 없다. 노동계는 끊임없이 토론만 하자며 수정안 제시를 거부하고 ‘1만원 수성’만 외치고 있다. 일종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다. 그렇다고 경영계가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경영계 위원 가운데는 회의 시작과 동시에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잠을 청하고, 회의가 끝나야 깨어나는 희한한 광경을 매번 연출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정안을 먼저 내면 노동계에 끌려갈 수 있다”며 고집을 부리는 중이다.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이 ‘너는 너, 나는 나’ 분위기라는 얘기다. 각자도생을 택하면서 협상의 기본 틀이 깨진 것이다. 이러면서 최저임금위원들은 회의 때마다 20만원의 회의비는 꼬박꼬박 챙겨가고 있다. 11일까지 회의비로만 5940만원이 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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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쯤 되면 최저임금위원회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저 협상장소를 제공하고, 회의비만 호주머니에 찔러주는 역할밖에 하는 게 없어서다. 법정시한이 지났다면 그동안의 논의를 토대로 공익위원 안을 도출하는 게 맞다. 심의를 앞두고 시행한 연구용역 결과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노사 양측의 의견도 들었다. 더욱이 노사와 공익위원이 전국을 돌며 산업현장의 여론을 수렴한 ‘현장실태보고서’도 있다. 공익위원안을 도출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위원회는 필리버스터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박준성 최저임금위원장은 “최저임금을 경제·경영학으로 봤는데, 이번엔 정치로 보였다”고 토로하며 눈물을 보였다. 한데 올해는 최저임금위원회가 경제적 접근이 아니라 노사 양측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행보를 걷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래서야 국가기관으로서의 위상은커녕 체면치레도 힘들다. 올해는 눈물로 호소하는 감성적 회고보다 논리로 무장한 당당함을 보고 싶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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