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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쌀이 빚은 사케, 250년 변함없는 맑은 맛으로 유혹

중앙일보 2016.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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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동안 전통 방식을 고수해 사케를 생산해 온 일본 나가타현의 이마요쓰카사 주조 전경.


눈·쌀·사케가 유명해 ‘3백(白)’의 고장으로 불리는 일본 니가타(新潟)현. 온통 순백의 눈으로 뒤덮여 ‘설국’을 이루는 겨울철에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평야, 높게 뻗은 삼나무 숲. 7월 초에 찾은 니가타는 발길 닿는 곳마다 청초한 여름 풍경이 이어졌다. 여기에 차진 쌀로 빚은 청량한 사케 한잔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여유 있는 여행이 완성된다.

'3백(白)의 고장' 일본 니가타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2시간이 지나자 일본 니가타 공항에 도착한다. 자그마한 공항을 빠져나와 차량으로 20여 분을 달리면 니가타역이 나온다. 도쿄에서는 신칸센을 타고 1시간40분 정도면 니가타역에 닿는다. 일본 혼슈 지역 중북부에 자리잡은 니가타현은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배경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는 소설의 첫 문장처럼 겨울이면 소설 속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니가타가 자리 잡은 서부 산간 지역은 긴 해안선을 따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과 수많은 하천이 비옥한 평야지대를 이룬다. 북서쪽으로 바다에 접해 있고, 남동쪽으로 에치고 산맥에 가로막혀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겨울에 최대 4m까지 눈이 쌓인다. 풍부한 적설량과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되기 적당한 기후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내린 물이 비옥한 땅에 흘러들어 맛 좋고 차진 쌀이 완성된다. 그 쌀은 곧 사케(일본식 청주)를 빚는 재료가 된다. 니가타가 눈·쌀·사케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양조장 90여 곳, 브랜드 190개 넘어
니가타는 물과 쌀이 좋아 오래전부터 고급 사케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니가타에 있는 양조장은 90여 개, 각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브랜드만 190여 개에 달한다.
  고급 사케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쌀의 외피에 영양분이 많으면 오히려 술맛을 떨어뜨릴 수 있어 이를 25~50% 정도 깎아내는 정미를 해야한다. 정미율은 사케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정미 뒤에는 남아 있는 쌀겨를 없애기 위해 물로 씻는 세미, 쌀을 물에 담가 찐쌀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침지, 누룩이 쉽게 번식할 수 있도록 쌀을 찌는 증미 과정을 거친다. 증미한 쌀을 알코올로 발효시키기 위해 누룩곰팡이 씨를 뿌려 누룩을 번식시킨 뒤 효모를 배양해 주모를 만든다. 주모에 찐살과 누룩, 물을 세 차례에 걸쳐 섞어 모로미를 만들어 준 뒤 한 달 정도 발효시켜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은 후 압축기로 짜낸다. 이 과정을 거쳐 술을 분리한 뒤 한 번 더 찌꺼기를 걸러낸다. 여과한 술은 열을 가해 저온 살균한 뒤 탱크에 저장해 숙성시키면 맑은 빛깔의 사케가 완성된다.
  이처럼 전통 방식을 고수해 알코올을 넣지 않고 쌀과 물만으로 빚은 사케를 ‘순미주(준마이슈)’로 부른다. 1767년부터 250여 년간 전통 사케를 만들어 온 이마요쓰카사(今代司) 주조는 순미주를 만드는 주조장이다. 매일 두 번씩 탱크에 저장된 술을 사람이 직접 긴 막대로 저어주면서 알코올 농도와 맛을 측정한다. 니가타의 명수로 꼽히는 ‘스가나다케산’의 천연수로 술을 만들어 감칠맛이 돈다.
  1790년에 문을 연 이치시마(市島) 주조는 200년 동안 가문 대대로 술을 빚고 있다. 니가타 지역의 쌀과 물을 까다롭게 엄선해 20여 종의 사케를 만든다. 발효시킨 술은 압축기를 사용해 찌꺼기를 여과하지만 최고급 사케(다이긴조)를 만들 땐 아직도 천에 직접 짜서 찌꺼기를 거른다. 일식의 풍미를 돋우는 단정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이치시마 주조의 7대 사장인 이치시마 겐즈 사장은 “기온과 습도가 적합한 겨울철에 술을 빚어 사계절 내내 판매한다”며 “전체 생산량의 3%가량은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조장 인근 이치시마 가문의 저택은 지역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식 정원을 바라보며 눈과 입이 즐거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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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카이산 주조 직원들이 찐쌀에 누룩곰팡이 씨를 뿌려 누룩을 만들고 있다.  

자연 냉장고 ‘설실’에서 숙성
니가타역에서 남동부 에치고 산맥을 따라 자동차로 1시간30분가량 달려 핫카이산(八海山) 지역으로 이동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핫카이산 사케를 맛볼 수 있다.
  1922년에 처음 문을 연 핫카이산 주조는 쌀을 35~65%까지 정미해 저온에 발효시켜 향을 억제한 고품질의 사케를 만든다. 1년에 1.8L짜리 사케를 330만 병 생산한다. 나카자와 미키 핫카이산 주조 실장은 “제조 과정이 현대화·기계화됐지만 누룩과 주모 만들기, 탱크 숙성 단계에서 술을 저어주는 과정만큼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겨울에 내린 눈을 1000t 이상 저장해 술을 숙성하는 ‘설실(유키무로)’에 들어서자 한여름인데도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전기시설 없이 쌓인 눈의 냉기로만 3~5도의 저온을 유지하는 자연 냉장고다. 설실에서 5년간 숙성돼 하얀 병에 담긴 사케는 맛이 부드럽고 순하다. 핫카이산을 대표하는 ‘공고신’은 효고현 지역의 특등급 쌀인 ‘야마다니시키’를 정미해 1년에 두 번 만들어내는 명주다. 한 모금 마시면 중후한 향기가 묵직하게 입안을 채운다.
  니가타 내 90여 개의 사케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사케를 한자리에서 맛보고 싶다면 신칸센 에치코유자와역 2층에 있는 사케 박물관 ‘폰슈칸’을 가볼 만하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사케 자판기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500엔을 내면 다섯 가지 사케를 시음할 수 있는 코인과 술잔을 준다. 양조장과 쌀 원산지, 알코올 농도 등을 읽어 보고 사케 자판기에서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100엔으로 간단한 안주도 함께 먹을 수 있다.
  소설 ‘설국’의 팬이라면 가와바타가 이 소설을 집필한 다카한 료칸을 잊지 말고 들를 것. 료칸을 개·증축한 기념관에는 가와바타의 작품 전시와 함께 그가 묵었던 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이경민 일본정부관광국서울사무소 마케팅 과장은 “니가타현은 일본 전통 술 ‘사케’의 제조 과정과 주조장을 견학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며 “일본의 새로운 매력을 경험하고 싶은 관광객에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1964년 설립된 후 관광을 통한 국제 교류 및 관계 발전을 위해 해외 각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국제관광진흥기구. 전 세계 13개국에 사무소를 설치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활동을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사이트(welcometojapan.or.kr/jrout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니가타=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취재 협조=일본정부관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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