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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유희남 할머니 별세…이제 40명 남아

중앙일보 2016.07.11 01:13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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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인 유희남(사진) 할머니가 10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그동안 폐암으로 투병해왔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0명으로 줄었다.

충남 아산 출신…15세에 끌려가
2012년부터 일본 사죄 요구 활동

1928년 충남 아산군 선장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인 43년에 일본 시모노세키로 끌려가 2년 가까이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는 마을에 ‘일본군이 처녀를 공출해간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했다. 하지만 친정으로 가던 중 정체모를 남자들에 의해 납치됐다. 고인은 생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나타난 남자 둘이 나를 끌고 갔다. 결혼했다고 했는데도 서류상으로 확인이 안 된다며 막무가내로 차에 태웠다”고 증언했다. 며칠 밤낮 차와 배를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시모노세키의 군부대 앞이었다.

위안부 생활은 지옥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으며 ‘게으름 피운다’는 이유로 매 맞은 날이 부지기수였다. 관리자에게 아프다고 말했다가 되레 흉기에 찔리기도 했다. 급히 치료받아 간신히 살아났지만 상처와 후유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2차대전 종전으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후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위안소에서 당한 일이 너무 수치스러워 가족에게 돌아갈 마음을 먹지 못했다. 절에 가 비구니가 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떠돌다 가정을 꾸렸고 자식을 키우며 보따리 장사를 하게 됐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도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말하지 못했다.

고인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은 남편과 사별하고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으로 간 2012년부터였다. 그는 2년 뒤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일본군의 동지’ 등으로 표현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 증인으로 나섰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 기업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산케이신문 등을 상대로 제기한 2000만달러(약 231억원) 손해배상 소송에도 참여했다. 이 소송은 최근 해당 법원에서 기각됐다. 고인은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위안부 피해 역사의 유네스코 등록을 주장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분당구 성남추모공원이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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