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친의 사진을 보며 웃고 있는 을라씨. [사진 최정동 기자]
한국 첫 세계여행가 김찬삼 딸 을라씨
58년부터 14년간 160개국 둘러본
부친 유품 최초 공개, 전시회 열어
“아버지, 사진·메모 많아 간첩 조사도”
지리교사였던 김찬삼 씨는 딸 을라 씨가 초등학생이었던 1958년 첫 세계여행을 떠났다. “당시 대법관이었던 조부는 물론 가족 반대가 심했죠. 세계일주를 한다는 건 죽으러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때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책만 보고 죽은 지식을 가르칠 수는 없다’며 가족을 설득했어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중동을 거쳐 2년 10개월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62년 『세계일주무전여행기』를 출간했다. 한국인이 쓴 최초의 세계일주 여행기였다. 이후 그가 160개국을 여행하면서 쓴 『김찬삼의 세계여행』시리즈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을라 씨는 “아버지가 여행 중일 때는 물론 한국에 돌아와서도 책을 쓰고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강연을 하는 탓에 아버지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게 몇십 년을 아버지 없는 고아로 지냈다”고 회상했다.

김찬삼씨가 생전에 사용하던 여행용품.
그는 아버지의 여행원칙도 소개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최소한 세 번을 보라고 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뜨기 전의 모습과 해가 환하게 비췄을 때 모습, 그리고 노을질 때의 모습. 그게 다 다르다는 거죠. 그는 또 “아버지는 차로 여행할 때도 그곳의 바람과 교감을 해야 한다며 절대로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을라 씨는 여행가의 딸이면서도 정작 아버지와 여행을 함께 한 추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대신 그는 매년 아버지의 기일을 전후해 추모 여행을 한다. 지난달에는 아버지의 여행 동료들과 중국에 다녀왔다. 그는 “예전엔 참 멋없는 아버지라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아버지가 남긴 말과 기록들을 보면서 여행의 정수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이드 등을 대상으로 외국에 나갔을 때 여행자가 지켜야 할 매너를 가르치는 여행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여행가 김찬삼씨를 재조명한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안스’는 한양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다음달 27일까지 열린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