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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깝치지 마라

중앙일보 2016.07.11 00:07 경제 8면 지면보기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다. 암울했던 일제시대(1926년) ‘개벽’ 잡지에 실린 저항시다. 이 시로 ‘개벽’은 검열에 걸려 판매금지당했다. 시에 등장하는 ‘제비야 깝치지 마라’는 말은 ‘제비야 재촉하지 마라’는 의미다. ‘깝치다’는 ‘재촉하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이다. 실제로 이상화 시인은 대구 사람이다.

자주 접하기 어려웠던 ‘깝치지 마라’는 이 말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시적인 감수성으로 이 표현을 가져다 쓴 것이라면 좋으련만 이들이 쓰는 ‘깝치지 마라’는 이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래와 다르게 ‘깝치다’가 ‘까불다’ ‘으스대다’ ‘잘난 척하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야, 깝치지 마라”고 하면 “야, 까불지 마라”는 뜻이다. 그리 좋은 말이 아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상으로 보면 비속어라 할 수 있다. 인기 연예인들이 TV에서 종종 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널리 쓰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쓰이는 ‘깝치다’는 표현에선 비슷한 구조(-치다)의 비속어인 빡치다(짜증나다), 뺑끼치다(요령을 피우다), 죽빵치다(집단 구타하다)는 단어가 묶음으로 연상되기도 한다. 발음은 거세고 의미는 부정적이다. ‘깝치지 마라’ 대신 상황에 따라 ‘까불지 마라’ ‘으스대지 마라’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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