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view &] 중국 벤처의 ‘성지’ 선전에서 배울 것들

중앙일보 2016.07.11 00:03 경제 8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만인혁신’ 내세워 사상 최대 창업
해외인력 돌아와 신산업 메카 부상
정부는 사전규제 대신 책임에 방점
새로운 시장 출현·성장 여건 마련

㈜쏠리드 대표이사

최근 중국 선전(深?)에서 온 경제단체 기업인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그들의 사업에 대한 열정과 경제성장을 통해 다져진 거침없는 자신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대중창업, 만인혁신’을 기치로 사상 최대의 창업붐을 조성하고 있는 중국 내에서도 선전은 창업의 천국이자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한때 저가 짝퉁제품을 양산하던 단순 제조기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혁신 창업의 허브이자 사물인터넷과 드론 등 신산업의 메카로 변모했다. 현재 중국은 국제특허 출원 건수 세계 1위로 미국을 앞지른지 5년이 지났고 그 중심에는 중국 전체 특허 신청 건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선전이 있다.

세계 최대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폭스콘과 전기차 판매량 기준으로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가 된 BYD, 세계적인 모바일 게임업체인 핀란드 슈퍼셀을 인수하며 글로벌 선두 게임업체로 자리매김한 텐센트,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글로벌 통신장비업계의 강자 화웨이는 모두 선전에서 창업해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Make with Shenzhen(선전과 함께 만들자)’는 슬로건 아래 선전시는 제조업 중심으로 창업을 장려하고 있으며 각종 창업카페에서는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창업의 기회를 위해 모여든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성공을 꿈꾸며 밤을 새우고 있다.

선전의 빠른 성장에 기여한 요인으로는 글로벌 물류 중심지인 홍콩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 외에도 세계의 공장으로 발전한 제조 클러스터가 구축돼 소량 주문도 단시간에 제작할 수 있는 생태계의 경쟁력을 들 수 있다. 과거 짝퉁의 대명사로 불리던 산자이(山寨) 문화가 기업들의 자원 공유를 통해 스타트업의 제품 혁신으로 발전한 것이다. 또한 중앙과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창업지원정책은 풍부한 민간 창업투자와 창업열기로 이어져 최적화된 창업 환경을 구축하게 됐다.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며 홍콩과 선전증권거래소 간 교차 매매를 허용하는 ‘선강퉁(深港通)’이 조만간 시행되면 선전은 또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된다.

선전의 부상을 보며 과거에 짧았지만 우리나라에 불었던 벤처 붐을 회상하게 된다. 2000년 무렵 벤처기업 1만개를 돌파하며 세계 유례없는 벤처 열풍을 가져왔고 한국은 미국 다음의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했다. 20년 전 한국은 벤처특별법을 제정하고 코스닥시장을 출범해 혁신에 기반한 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했고 자금조달과 회수시장을 마련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버블’이 붕괴하면서 국내 벤처업계도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최근 정부의 창조경제를 기치로 한 벤처활성화 정책에 힙입어 다시 벤처창업 생태계가 어느 정도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벤처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중국의 선전뿐만이 아니라 저성장에 빠진 글로벌 선진강국들이 모두 벤처창업 확산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급부상한 중국의 벤처기업 핵심 인력을 보면 해외유학을 거쳐 구글과 애플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실력을 쌓고 본국으로 돌아온 인재들이 많다. 인력의 수준은 이미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우수한 인재들이 안정된 직장에만 쏠리지 않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벤처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의 도입과 함께 기업가정신의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

중국의 신세대들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돼 있다. 사전규제보다 사후책임을 중요시하며 시장이 성장한 후 그에 맞는 규제를 만들어가는 중국 정부의 정책은 핀테크산업을 급성장 시켰다. 우리나라는 수년간 핀테크 산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이런저런 규제로 IT기업의 핀테크분야 진출은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지난주 정부는 민간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대책이 포함된 ‘중소·벤처 혁신역량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민간자본의 벤처투자 확대를 위해 세제지원 신설 등이 포함된 이번 대책은 그러나 현 정부에서 지금까지 내놓은 벤처대책들의 추가적 보완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동안의 벤처대책이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패러다임 변화 수준의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창조와 파괴적 혁신은 기업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데에도 필요해 보인다.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쏠리드 대표이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