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그니처’ 반응보려…트럭 타고 미국 세바퀴

중앙일보 2016.07.11 00:01 경제 5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시그니처 키친스위트’ 전시장에서 만난 김수연 LG전자 생활가전디자인팀 연구원은 “내구성과 고급스러움을 위해 금속·유리를 주요 소재로 썼다”고 말했다. [사진 LG전자]

“이 냉장고 안팎의 디자인대로 샘플을 만드는데만 1억원이 넘게 들어요. 제품마다 샘플을 만들어 트럭에 싣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어요. 혹시 흠집이라도 날까봐 누구한테 맡기지도 못하고 디자인팀과 상품기획팀 직원들이 직접 포장을 하며 애지중지했지요.”

디자인 프로젝트 리더 김수연
샘플 싣고 다니며 선호도 조사
호텔에 제품 설치 의견도 들어
묵직한 느낌은 ‘대장정’ 결과
외관에 LG전자 로고 없애

7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의 LG베스트샵 강남본점 매장. 4층 주방가전 코너에 이 회사의 빌트인(붙박이) 주방가전 신제품 ‘시그니처 키친스위트’가 전시돼 있었다. 김수연(36) LG전자 생활가전디자인연구소 연구원은 “세 차례 미국 투어를 벌이며 현지 디자인 반응을 조사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10일 국내에 출시된 시그니처 키친스위트 제품의 전체 디자인을 총괄한 프로젝트 리더다. 2013년부터 3년 간 제품 출시를 준비했다. 이 제품은 올 초 세계 3대 디자인상인 iF와 레드닷, IDEA를 모두 수상했다. 시그니처 키친스위트는 LG전자가 표방하는 ‘초프리미엄 브랜드’ 시그니처에서 처음으로 내놓는 빌트인 주방가전이다. 얼음정수기 냉장고와 전기 오븐·전기레인지·전자레인지·식기세척기 등 5가지 상품으로 구성됐다.

모든 제품은 표면이 부드럽게 가공된 스테인레스다. 무선랜(Wi-Fi)를 탑재해 스마트폰으로 제품의 작동 상태 등을 확인하고 간단히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기사 이미지
이 제품은 원래 빌트인 주방가전 수요가 큰 미국 시장을 겨냥해 설계됐다. 미국 빌트인 주방가전 시장 규모는 70억 달러(약 8조1000억원) 수준. 보쉬의 ‘가게나우’, GE의 ‘모노그램’, 1000만원대 냉장고로 유명한 ‘서브제로’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이 시장 고객의 5%, 매출액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걸로 업계는 분석한다.

미국 소비자의 디자인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해 철저한 현장 조사를 벌였다. 2013년 프로젝트 출범 초기 미국 업체서 디자인 컨설팅을 받았고, 2014년 세 차례 미국을 돌며 현지 바이어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500여명의 의견을 취합했다. 미국 주요 거점 도시의 호텔에 제품을 설치하고 이들을 초청해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물은 뒤 몇개월 뒤 수정한 디자인으로 샘플을 제작해 또 같은 바이어를 찾는 식이었다. 미 전역을 한바퀴 도는 데만 2달씩 걸렸다.
기사 이미지
미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묵직한 느낌의 소재감, 다소 투박해 보이는 로고는 현지 반응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LG전자에서 왔다는 말을 아예 하지 않았어요. 자신의 이야기가 실제로 디자인에 반영된다는 걸 느꼈는지 갈수록 진지한 피드백을 주더군요.” LG전자는 신제품 외관에서도 LG전자 로고를 아예 뺐다. 브랜드 자체의 가치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 로고가 빠진 제품은 시그니처 키친스위트가 처음이다.

김 연구원이 3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프로젝트 리더가 된 건 2003년 입사 이후 주방가전 디자인만 맡아온 데다 북미 지역 특화 제품을 디자인한 경험이 많아서다. “입사 당시 많은 동기들이 휴대전화 디자인을 가장 하고 싶어 했지만, 저는 처음부터 주방가전 디자인을 희망했어요. 요리가 취미이기도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꿀 정도로 생활 공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국내 출시된 5개 제품의 출고가를 합치면 2550만원. 비슷한 사양의 빌트인 주방가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비싸다. 이런 프리미엄 제품군의 수요가 국내에 얼마나 될까. “아직은 미국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크진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나 수익성은 일반 가전보다 훨씬 큽니다. 타워팰리스 같이 1990년대 후반에 지어진 프리미엄 아파트에서 리모델링 수요가 일어나는 것도 호재구요.”

그는 “앞으로도 계속 빌트인 가전 디자이너로서 제품 설계부터 양산 과정까지 참여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며 “시그니처 키친스위트의 후속 모델을 잘 내서 브랜드를 안착시키는 것이 눈앞의 목표”라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