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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는 무슨…회장님들은 고민 중

중앙일보 2016.07.11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빌 게이츠(61)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1995년 여름 휴가 중 생각에 잠겼다.

이재용·정몽구·최태원·구본무
특별한 계획 안 잡고 경영 구상
소환 앞둔 신동빈, 휴가 반납
조양호·박삼구 그룹회생 골몰

‘윈도우 운영체제(OS) 만으론 떠오르는 인터넷 생태계를 휘어잡을 수 없다. 웹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자.’

그래서 탄생한 웹브라우저가 ‘익스플로러’다. 그는 최고경영자(CEO)를 지낼 당시 일 년에 두 번 꼬박꼬박 휴가를 챙겼다. 휴가 이름은 ‘생각 주간(Think Week)’. 이 기간 동안 TV·라디오는 물론이고 전화도 끊고 캘리포니아 별장에서 은둔했다. 하루 18시간 이상 책과 보고서를 읽으며 새로운 경영 전략을 구상했다. 그는 2008년 7월 ‘생각 주간’을 가진 직후 회장에서 물러나겠다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 대기업 회장들도 모처럼 만에 휴식에 들어간다. 다만 경영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빌 게이츠처럼 공식적인 휴가를 내고 은둔하는 대신 틈틈이 자택에서 쉬며 경영 구상에 몰두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과 악화한 그룹 실적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하반기 사업 계획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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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인 이건희(74) 삼성전자 회장은 이번 여름 휴가도 병원에서 맞는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을 일으켜 쓰러진 이 회장은 수술을 받은 뒤 재활치료 중이다. 장남인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은 특별한 여름 휴가 일정을 잡지 않았다. 5~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선밸리 컨퍼런스)에 참석한 뒤 귀국해 하반기 경영전략 수립에 몰두한다. 수년 째 이 부회장 주도로 추진해 온 전자·바이오·스마트카 중심 사업 재편 구도를 한층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전자의 하반기 최대 프로젝트인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성공적인 론칭에 집중한다.

정몽구(78)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기아차 전 사업장이 여름 휴가에 들어가는 8월 첫째 주에 휴가를 내고 한남동 자택에서 경영 전략을 구상한다. 내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상반기 45.9%에서 올 상반기 43%로 소폭 떨어진 만큼 판매 부진에서 벗어날 전략을 짜는 데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 반전에 나설 기대주는 11월 출시를 앞둔 신형 그랜저다. 신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제네시스 브랜드와 친환경차 아이오닉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것도 관심사다.

연초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는 등 숨가쁜 경영 행보를 달려온 최태원(56) SK 회장은 따로 휴가 계획을 잡지 않았다. 최근 그룹 CEO들에게 과감하게 ‘틀을 깨는 경영’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만큼 그룹 전반의 혁신 분위기 구축을 위한 방안 마련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틈틈이 한남동 자택에서 쉬며 에너지 신사업 발굴 같은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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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71) LG 회장은 7월 말 ~8월 초 쯤 일주일 정도 한남동 자택에서 쉬며 하반기 경영구상에 들어간다. 특히 부진에 빠진 스마트폰 사업부 실적 개선에 골몰한다. 또 지난해부터 강화한 자동차부품(VC) 사업 부문과 고급 가전 브랜드 ‘시그니처’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도 가다듬는다. 구 회장은 휴가 동안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조직 개편을 통한 분위기 쇄신책을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에 이어 그룹의 전방위 검찰 수사까지 맞닥뜨린 신동빈(61) 롯데 회장에게 여름 휴가는 없다. 김앤장법률사무소 등 대형 로펌으로 변호인단을 꾸린 신 회장은 초읽기에 들어간 검찰 소환 조사 대비에 집중할 계획이다. 호텔롯데 상장과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 등 그룹 주요 현안은 일단 뒷순위로 밀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68) GS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만(61)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모처럼 경제단체 업무에서 벗어나 각각 동부이촌동·한남동 자택에서 쉴 계획이다. 허 회장은 동남아 시장 진출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 전략이, 박 회장은 하반기로 예정된 밥캣 기업공개(IPO)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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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64) 한화 회장은 특별한 휴가 계획을 잡는 대신 현장 경영의 고삐를 죈다. 지난 5일 1년 7개월여 만에 사업장(한화큐셀 진천공장)을 찾은 김 회장은 이달 중순 예정된 여의도 갤러리아면세점 전면 개장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틈틈이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쉬며 그룹이 주력하는 태양광·방산·케미컬 부문 경쟁력을 끌어올릴 사업 전략을 짤 계획이다.

항공 업계 총수도 푹 쉬긴 어려운 상황이다. 조양호(67) 한진 회장도 별도 휴가 계획을 짜지 않았다. 한진해운 구조조정이란 당면 과제가 버티고 있어서다. 실적 악화에 빠진 대한항공을 일으켜세우는 것도 과제다. 그는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성수기를 맞는 매년 여름마다 휴가 없이 정상 근무해왔다.

박삼구(71)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가 목전에 다가왔다. 틈틈이 한남동 자택에서 쉬며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그룹 전반에 드리워진 위기의 그림자를 걷어낼 사업 구상에 골몰할 계획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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