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루스벨트 딸 청첩장도 나왔다, 120년 된 ‘벽난로 타임캡슐’

중앙일보 2016.07.09 01:09 종합 8면 지면보기
미국 워싱턴DC의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의 복원 과정에서 120년 전 공사관의 활동상을 담은 사료들이 대거 발견됐다. 발견 장소는 2층 벽난로와 벽 사이의 공간. 벽난로를 덮은 상판을 해체하자 전시회 초대장과 사교 장소로 쓰였던 교회의 자료,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장녀 앨리스의 결혼식 안내장 등이 쏟아져 나왔다. 120년의 세월을 견딘 ‘벽난로 타임캡슐’인 셈이다.

전시 초대장, 교회 자료, 연하장…
건물 복원 과정서 11건 15점 발굴
“외교권 뺏긴 뒤에도 활발한 활동”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세기 말~20세기 초 공사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11건 15점의 자료가 발굴됐다. 외교사적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기사 이미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장녀 앨리스의 결혼식 청첩장. [사진 문화재청]

이 중 압권은 1906년 2월 앨리스가 공사관에 보낸 것으로 보이는 자신의 결혼식 피로연 안내장. 앨리스는 오하이오주 하원의원이던 니컬러스 롱워스(당시 37세, 1925년에 하원의장이 됨)와의 결혼식 참석을 청하는 안내장을 직접 보낸 것으로 보인다. 안내장에는 ‘다음주 일요일’ ‘2월 18일’ 등의 글자가 남아 있다. 당시는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강탈당해 김윤정 서리공사는 귀국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앨리스가 공사관에 안내장을 보낸 것은 루스벨트가와 교류를 맺은 당시 외교관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수동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사무총장은 “당시 앨리스는 미국 내에서 사교계의 여왕으로 불렸고 결혼식 5개월 전인 1905년 9월에는 경운궁(현 덕수궁)을 방문해 고종황제까지 직접 알현했다. 김윤정 공사는 귀국 직전 백악관에서 열린 앨리스의 결혼식에 직접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에디스 하워스가 그려 보낸 크리스마스·신년 카드. [사진 문화재청]

1892년 워싱턴DC에서 개최된 캐나다 출신 화가 조지 브뤼네가 보낸 전시회 초대장도 주목된다. 재단 측은 “이 초대장과 이듬해 촬영된 공사관 1층 객당(응접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서양화 2점의 관계가 흥미롭다. 화풍이 유사한 점으로 미뤄 브뤼네의 작품을 (1892년 전시회에서) 공사관이 입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1904년 11월 25일 장로교회 강연 초대장’도 눈길을 끈다. 당시 이채현 서리공사 부인(성주 배씨)의 교회를 중심으로 한 사교 활동의 일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현지 신문기사에 따르면 배씨는 미국 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 부부와 같은 워싱턴 커버넌트 장로교회에 다니며 교류했다고 한다. 배씨는 이를 인연으로 대통령·각료 부인들과 사교클럽을 만들어 만찬을 가질 정도였다. 미국 여성화가 에디스 하워스가 그려 보낸 크리스마스 및 신년 카드(제작 연도 미상), 지금은 철거되고 사라진 버지니아주 소재 댄빌 군사학교 전경이 담긴 엽서 등도 발견됐다.

공사관 복원 작업에 참여한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벽지 하나도 몇 겹으로 돼 있는지 한 장씩 뜯고, 페인트 칠도 몇 차례 덧칠돼 있는지 고증하는 문화재 복원 원칙을 지킨 게 사료 발견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지금의 주미 한국대사관에 해당된다. 고종은 청의 간섭에도 미국에 공사를 보냈고 1891년 황실 내탕금 2만5000달러(현재 가치 14억원)의 거금을 들여 공사관 건물을 구입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때 일제가 단돈 5달러에 강탈한 뒤 미국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한국 정부가 102년 만인 2012년 350만 달러(40억원)를 들여 되찾았다. 박보균 본지 대기자가 환수에 대한 공로로 2013년 8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내년 봄 개관 예정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현재 600만 달러(70억원)를 호가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