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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서 일본수군 처음 격퇴"···군함 타고 거제도 등 돌아봐

중앙일보 2016.07.09 00:19 종합 17면 지면보기
“자, 멀리 보이는 긴 다리가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예요. 다리 지나 바로 저기서 이순신 장군이 처음 일본군을 무찔렀던 옥포해전이 있었죠.”

'이순신 리더십' 배우는 대학생들

지난달 23일 바다 위에서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은 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이 탄 4500t급 해군 함정 천왕봉함은 경남 창원 해군사관학교에서 출발해 바다로 유유히 나아갔다.

청년들은 사단법인 이순신리더십연구회가 주최한 ‘2016 대학생 이순신리더십캠프’에 지원한 대학생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해군사관학교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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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이순신리더십캠프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배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424년 전 한산대첩을 치렀던 한산도가 전면에 보인다.

23일은 3박4일의 캠프 일정 중 해군 수송함을 타고 임진왜란 전적지를 돌아보는 날이었다. 배를 타고 다섯 시간 정도 달리자 지척에 한산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상 해설을 맡은 이봉수(58) 이순신전략연구소장이 청년들에게 물었다.

“학이 날개를 펴듯이 친 진영을 뭐라고 하는지 아나요?”

424년 전 바로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한산대첩을 치렀다. 1592년 8월 13일 장군은 통영과 거제도 사이의 좁은 수로인 견내량 해협에 왜적선 70여 척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조선군 전력은 거북선 3척과 판옥선 56척이 전부였다. 이순신 장군은 먼저 5~6척의 판옥선으로 왜군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유인했다. 그리고 한산도와 견내량 사이 섬에 미리 대기시켜 놨던 배 50여 척으로 왜적선을 포위했다. 그 모양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것과 같다고 해 ‘학익진(鶴翼陳)’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저 섬에 올라 갑옷을 벗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섬이 ‘해갑도(解甲島)’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 소장이 바위섬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군이 싸웠던 바로 그 바다 위에서 청년들은 한동안 주변 풍광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누군가는 연신 셀카(셀프카메라)를 찍어댔다.

최종 목적지는 이순신 장군이 전시 중 머물던 한산도 제승당이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짧게 참배한 뒤 수루에 앉아 해안을 바라봤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400여 년 전 장군은 수루에서 이 구절를 읊조렸을 것이다. 대학생 홍채인(24)씨는 “수능 공부를 할 때 책상 앞에 ‘필생즉사 필사즉생’을 써놓고 공부했는데 직접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돌아보니 치열했던 당시 현장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번 캠프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생 92명이 참가했다. 이순신리더십연구회 회장인 지용희(73) 서강대 명예교수는 “23전23승을 이끈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교과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의 역사학자 도쿠토미 이치로는 『근세 일본 국민사』에 이렇게 기록했다.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 (중략) 그는 동양 3국을 통틀어 최고의 영웅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문무를 두루 갖췄고 휘하의 군사들 앞에서 늘 솔선수범하던 명장이었다. 지용희 교수는 캠프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이순신 장군은 병력·무기·식량 부족과 주위의 모함 등 악조건 속에서도 투명하고 공정한 일 처리, 빈틈없는 위기 관리, 철저한 기록정신, 탁월한 전략으로 나라를 구했다. 그의 리더십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될 만 하다”고 말했다.

캠프 기간 동안 청년들에게는 변화가 찾아왔다. 그동안 위인전이나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이순신 장군을 봐 온 게 전부였던 학생들은 이번 캠프로 이순신 장군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창업이 목표인 대학생 이중호(26)씨는 “이순신 장군은 말을 바꿔 타 가며 백성들의 민심을 훑고 흩어진 병사와 무기를 모았다고 한다. 이번 캠프에서는 당시 장군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좀 더 가까이에서 상상해 볼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한산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해군사관학교로 돌아가는 길. 학생들은 갑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424년 전 격전이 펼쳐졌던 그 바다 위에서 이순신 장군은 청년들의 마음에 불멸의 영혼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역사학자의 말처럼 이순신 장군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

통영=글·사진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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