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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쉽게 타협하면 역사의 복수 부른다

중앙일보 2016.07.09 00:01 종합 1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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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전략
김연철 지음, 휴머니스트
767쪽, 3만2000원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내가 있어 남이 있고, 남이 있어서 나도 있다. 생각과 처지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기 위해서는 타협이 불가피하다. 협상은 타협의 과정이다. 데이트를 하면서 무얼 먹고,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는 과정도 협상이고, 경제적 이익을 놓고 다투는 비즈니스 과정도 협상이다. 삶은 협상의 연속이고, 역사는 협상의 축적이다.

협상을 다룬 책은 많다. 협상의 기술, 협상의 공식, 협상의 한 수….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는 협상에 관한 책만 2400종이 넘는다.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 협상의 테크닉을 다룬 자기 계발서가 대부분이다.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역사의 동인(動因)으로서 지역 또는 국가 간 협상에 초점을 맞춘 책은 많지 않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의 『협상의 전략 』은 협상의 관점에서 20세기 역사를 재조명한 노작(勞作)이다.

저자는 20세기 역사를 뒤흔든 스무 가지 협상을 다룬다. 우선 그는 ‘인내의 힘’, ‘인정의 가치’, ‘양보의 역설’, ‘화해의 기술’ 등 네 가지 선정 기준을 정했다. 이어 각각의 기준에 부합하는 다섯 가지 협상 사례를 골랐다. 예컨대 인내를 키워드로 한 카테고리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연 뮌헨협상, 핵전쟁을 막은 쿠바 미사일 협상, 300여 년에 걸친 중·소 국경협상, 졸속 통일의 위험을 생생히 보여준 예멘의 통일협상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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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휴머니스트]

책에서 다룬 협상 중에는 동서독 협상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협상도 있지만 키프로스 통일협상이나 미얀마 소수민족 평화협상 처럼 우리에게 생소한 협상도 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한국전쟁 휴전협상과 한·일 협정 협상 등 두 가지를 다뤘다.

김 교수는 각각의 협상에 얽힌 역사적 배경과 전개 과정, 협상 결과를 요령 있게 설명한다. 깔끔하게 정리한 연표와 지도·사진 등은 협상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성공한 협상에서는 지혜를, 실패한 협상에서는 교훈을 도출한다. 유럽통합의 모체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협상에서는 “적을 동업자로 만들라”는 지혜를, 한·일 협정 협상에서는 “쉽게 타협하면 역사가 복수한다”는 교훈을 끌어냈다.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평양에서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 참석해 밀고 당기는 신경전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난 2005년 어느 날 새벽, 그는 협상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책은 10년 공부의 결실이다. 국내외 관련 서적과 자료를 꼼꼼히 조사해 철저히 자기 것으로 체화한 뒤 그것을 저자 자신의 시각과 문체로 풀어냈다. 번역서와 달리 술술 읽히는 이유다.
 
[S BOX] 협상 성공하려면 지금 주고 나중에 받아라

“ 적에서 친구가 될 때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치유할 시간이 필요한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면 예멘처럼 반드시 곪는다. ”(1부 ‘인내의 힘’)

“협상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상대를 인정해야 협상을 시작할 수 있고, 협상을 해야 친구가 될 수 있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상처럼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휴정협정에 서명해도 전쟁은 다른 형식으로 계속된다. ”(2부 ‘인정의 가치’)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상대에게 얻을 것이 있으면 과감히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줄 수 있어야 한다. 1987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은 양보하지 않고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3부 ‘양보의 역설’)

“화해가 없는 평화는 깨지기 쉽고, 화해가 없는 관계는 후퇴하기 쉽다. 관계를 처음 시작할 때는 서독의 동방정책처럼 작은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4부 ‘화해의 기술’)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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