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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음식과의 관계가 편안하지 않은 남자

중앙일보 2016.07.09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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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음식과 섹스는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남성들이 여자 없는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란 음식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해서 섹스에 대한 것으로 끝난다. 나는 감히 여성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미국 칼럼니스트 마크 쿨란스키의 『음식사변』에서 인용했다.

우리에게 섭식 장애는 여성 전유물처럼 인식되어 있다. 마른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삼는 분위기,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환상 때문에 80% 이상의 여성이 자신을 비만이라 여긴다는 근거를 댄다. 하지만 섭식 장애는 생물학적 원인, 심리적 요인 등이 복합되어 나타나며 거기에 남녀 구분은 없다. 미국 통계에 의하면 여성의 60%, 남성의 40%가 섭식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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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에서 섭식 장애는 구강기 문제로 본다. 생후 18개월까지의 시기에 수유와 보살핌에 좌절이 있을 때 발생한다. “구강 욕동이 그것을 방해하는 힘(방어)에 의해 차단될 때 구강 갈등 상태가 발생한다. 음식에 대한 혐오, 음식 특이체질, 토하기, 턱 경련, 이 갈기, 언어 장애 등과 같은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정신분석 용어사전』에서 인용했다. 섭식 장애에 숨어 있는 또 한 가지 정서는 무력감이다. 음식을 거부하면서 힘없는 상태에 머물거나 폭식 후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반복 경험한다. 무력감도 구강기 좌절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문제이며 좌절감·의존성·조급함 등의 정서로 경험된다. 폭식 후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토할 때 자신에 대한 환멸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여성이 있다. 폭음 후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픈 아침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남성도 있다. 음식을 섹스와 연관시켜 인식하기 좋아하는 남자의 관점에서 보면 섭식 장애는 또한 성 불능의 문제와도 관련 있다. 구강기 의존성의 문제로 인해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현대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성·사랑·에로티시즘에서 어려움을 경험한다. 미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설명이다.

가끔 우리 사회 전체가 섭식 장애를 경험하는 듯 보일 때가 있다.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그런 현상에 대한 거부감 등이 교차되어 표현된다. 대중이 만드는 문화는 곧 우리의 모습이다. 거식증이든 폭식증이든 우리 사회는 지금 자신을 인식해가는 과정에 있는 듯 보인다. 인식 이후에야 변화든 파괴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음식은 섹스만큼이나 무궁한 소재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만 강조해 놓은 글은 외설문학과 마찬가지다.” 역시 마크 쿨란스키의 말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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