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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브렉시트 속에 거제도가 보이는 이유

중앙일보 2016.07.09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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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한국이 가상의 ‘아시아연합’에 속한다고 상상해보라
여야 모두에 실망한 민심이 낳은 결과가 브렉시트

전 서울 특파원

영국 사람인 내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 본 칼럼에 쓰지 않는 것은 이상한 선택일 것이다. 아슬아슬한 표 차로 선거에 지려는 정치인이나 주 공격수에게 코너킥을 맡기는 축구 감독만큼이나···.

가까운 미래를 무대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해보자. 여러분이 어린이라고 상상하라. 여러분 아버지는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한다. 그 조선소는 2010년대 말에 결국 폐쇄된다. 정부는 폐쇄를 막거나 폐쇄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아무 일도 안 한다. 여러분은 한때 풍요로웠으나 좋은 일자리도 돈도 모두 사라진 공동체에서 자라난다.

10여 년의 시간이 더 흘러 학교를 졸업한 여러분은 최저임금 일자리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어느 날 여러분은 서울을 방문해 돈이 훨씬 많은 그곳 사람들이 여러분을 얕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여러분이 무식하거나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여러분의 억양·복장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사고실험 속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경제적으로는 연합, 정치적으로는 ‘느슨한’ 연합을 결성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자유무역과 자유이동이 실현된다.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쉽게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고, 중국의 아파트를 사고, 일본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돈도 없고 외국어도 모르기 때문에 모두 다 그림의 떡이다. 한편 수많은 근면한 베트남 사람이 여러분의 고향으로 이주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일부는 창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지만 여러분 눈에는 오로지 여러분 일자리가 당면한 위협만 보인다.

두 주요 정당과 재계는 ‘아시아연합’을 좋아한다. 그들은 ‘아시아연합’이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주는 이득이 많다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정작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한편 정책 일반의 측면에서 보면 주요 우파 정당은 전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무시한다. 주요 좌파 정당을 가득 채우게 된 소위 ‘스카이(SKY)’ 출신 엘리트는 진보적으로 들리는 말을 하지만 그들은 노동자계급 사람들을 실제로는 모른다. 여러분은 그들 또한 여러분을 우습게 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쉬운 말을 쓰는 정치인이 나타나 ‘아시아연합’이 모든 문제의 뿌리라고 알려 준다. 여러분은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여러분은 또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한데 이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과는 다르게 말한다.

그 정치인과 신문은 엘리트주의적·세계주의적인 서울 사람들과 서울 사람들을 위해 아파트를 짓고 가게와 식당에서 서빙하는 최근에 도착한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여러분이 ‘진짜 한국인’이라고 알려 준다. 그들은 또 외국인에 대한 여러분의 ‘부정적인’ 생각이 인종차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알려 준다. 여러분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권위 있는 누군가가 여러분을 존중하고 여러분의 이익을 대변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아시아연합’ 잔류와 탈퇴 중 여러분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묻는 투표를 정부가 제안한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016년 영국으로 되돌아가자. 나는 전적으로 잔류파다. 나는 유럽연합(EU)이 맹목적 애국주의자와 기회주의자가 결성한 연대의 부당한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결함도 있지만 EU는 많은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가치 있는 기구다. EU는 인권과 반독점주의를 지지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술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더 좋은 문화적·상업적 기회를 제공한다. 강대국 지위를 상실한 유럽 국가들이 EU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대접받을 수 있다. 나는 거짓말 때문에 EU 탈퇴파가 이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탈퇴 쪽에 투표한 사람은 멍청하다는 생각은 틀렸다.

유시민은 ‘브렉시트가 통과되면 영국은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은 대량 실업으로 최하류층을 양산했다는 점에서 이미 실패했다. 한국이 ‘아시아연합’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지 모르지만 이미 거제도 같은 지역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한국 정치인들의 대응 방식은 영국 정치인들과 다를 것인가.

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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