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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수퍼 3인조 강도치사' 재심 결정…17년만에 진범 바뀌나

중앙일보 2016.07.0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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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준희 기자] 8일 '삼례 나라수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의 재심 개시 결정 직후 전주지법 2호 법정 앞에서 17년 전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던 최모(37·오른쪽 두 번째)씨 등 '삼례 3인조'와 박준영 변호사(왼쪽 두 번째)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검·경의 부실 수사와 진범 논란을 빚었던 '삼례 나라수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의 진실을 17년 만에 다시 가리게 됐다.

전주지법 형사1부(부장 장찬)는 8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처벌받은 최모(37)씨 등 3명의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해 이들의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장찬 부장판사는 결정문 낭독 후 "너무 늦게 재심 결정이 이뤄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1999년 사건 발생 직후 최씨 등이 범인으로 몰려 처벌을 받았지만 올 초 이모(48)씨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 선언'을 한 점을 고려했다. 또 피해자 유족이 찍은 경찰 현장검증 영상 등을 토대로 최씨 등의 무죄 주장에 대해 다시 살펴볼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는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될 때'를 재심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원심이 증거로 삼았던 최씨 등의 경찰 조서를 '허위로 작성된 공문서'로 규정했다.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았고, 피고인들이 스스로 범행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거나 범행 과정을 재연한 사실이 없는데도 경찰 조서에선 이를 한 것으로 기재했다"는 게 이유다. 특히 현장검증 영상을 근거로 "경찰관들이 피고인들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며 범행 재연을 강요했다"고 봤다. 이는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독직 폭행·허위 공문서 작성 죄에 해당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1999년 부산지검이 '이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벌인 내사 과정에서 이씨 등 3명이 범행을 자백한 사실도 최씨 등에게 유리한 증거로 판단했다. 이씨 등이 진술한 나라수퍼 위치와 내부 구조, 범행 중 대화 내용 등은 실제로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인 반면 최씨 등의 진술은 서로 모순되고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이 조사한 용의자는 '경상도 말씨'를 썼지만, 최씨 등은 경상도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은 '삼례 토박이'라는 점도 재심 사유로 언급됐다.

최씨는 재심 결정이 이뤄지자 "다음부터는 저희와 똑같은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재판이 끝나면 우리도 새로운 출발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압 수사 의혹을 사고 있는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저희처럼 교도소에 갔다 와보라는 생각이다. 한번이라도 '억울하게 사는 게 어떤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재심 결정을 이끈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결정은 당시 재판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 수사 과정에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검찰이 3일 내 항고를 할 수 있지만 항고를 하는 것 자체가 '진범이 따로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따르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택 전주지검 차장검사는 "법원의 결정문을 살펴본 뒤 항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3인조 강도가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수퍼에 침입해 잠을 자던 유모(당시 76세) 할머니의 입을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 254만원어치를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경찰은 당시 인근에 살던 최씨와 임모(37)씨, 강모(36)씨 등 20대 동네 선·후배 3명을 강도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최씨와 임씨는 지적장애인이었고, 강씨는 말과 행동이 어눌했지만, "진범이 따로 있다"는 여론을 무시한 경찰의 판단에 의해 3∼6년간 복역하고 출소했다.

앞서 최씨 등의 형이 확정된 직후인 1999년 12월 부산지검은 이씨 등 용의자 3명을 검거한 뒤 자백까지 받아내 전주지검으로 넘겼지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자백 번복 등이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이 처분을 내린 검사는 최씨 등 3명을 범인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던 검사였다. 결국 이 사건은 숱한 의혹만 남긴 채 공소 시효 10년을 넘기면서 사건 기록도 모두 폐기됐다.

최씨 등은 지난해 3월 "경찰의 가혹 행위로 인해 범행을 허위로 자백했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피해자 유족도 경찰과 검찰이 범인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3명 중 이씨가 지난 1월 충남 부여군의 피해자 묘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내가 진범"이라고 사죄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씨는 이번 재심 청구 사건의 증인으로 나와 "당시 지인 2명과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3인조 중 조모씨는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고, 배모씨는 지난해 4월 숨졌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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