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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금융허브 내놔라”…런던 흔드는 유럽의 도전자들

중앙일보 2016.07.08 01:17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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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였다. 세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온갖 발언이 쏟아졌다.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총리는 ‘새로운 브레턴우즈 시스템’을 주장했다. 위기 주범인 미국 금융패권을 대신할 체제를 만들자는 얘기였다. 중국이 화답했다. 위안화 국제화 작업에 착수했다. 관심은 ‘위안화 역외 허브’를 어디에 둘 것인가였다. 홍콩에 이어 위안화 역외 거래 시장을 유치하려는 주요 도시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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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영국 런던이었다. 중국 정부와 런던은 2013년 위안화 허브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계금융의 중심으로 다양한 금융 인프라와 우수한 인력, 문화 등이 갖춰진 데다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관문이라는 점이 런던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중국을 등에 업은 런던은 질주했다. 중국인민은행은 지난해 10월 런던에서 50억 위안 규모의 역외어음 발행에 성공했다. 중국 중앙은행이 해외에서 발행한 첫 위안화 표시 어음이었다. 지난달 9일 중국 정부가 해외에서 처음 발행한 위안화 채권도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유로화에 이어 위안화까지 손에 넣은 금융중심지 런던의 태평성세는 이어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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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금융 중심지’ 런던의 위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뜻밖의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달 23일 치러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다. EU 탈퇴를 결정하며 런던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섰다. 브렉시트 결정으로 영국이 ‘금융여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금융여권’은 EU 28개 회원국 금융사에 부여한 가상의 유럽 단일 금융시장 접근권이다. 런던은 유럽 내에서도 금융 위상이 가장 높은 도시다. 유로화를 쓰지 않는 영국이 유로화 거래를 장악한 이유다. 이런 도시의 금융여권 약발이 사라진다면 ‘런던 엑소더스(탈출)’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건 불가피하다.

86년 대처 총리 과감히 규제 완화
외국 금융사 몰려들며 ‘런던 빅뱅’
브렉시트로 금융 센터 지위 약해져

금융의 세계에서 영원함이란 없었다. 역사의 부침 속에 금융 중심지는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찰스 킨들버거의 『경제강대국 흥망사』에 따르면 역사에서 화려하게 빛났다가 가장 먼저 사라진 곳은 이탈리아다. 메디치 가문이 장악했던 피렌체와 베네치아·밀라노 등 이탈리아 북부는 15세기 세계 금융시장을 주름잡았다. 하지만 무역·해운이 약화하고 외국 군주의 채무불이행이 늘어나며 이탈리아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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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은 교황을 배출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런데도 채무자의 돈 떼먹기에 무너졌다. 17세기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한 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다.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등에서 옮겨온 금융인들이 선물과 옵션 등 다양한 금융 기법과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전쟁 등으로 거래가 끊긴 뒤 암스테르담의 영향력은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주력 시장에서 차단된 금융 중심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암스테르담 고립 이후 18세기 글로벌 금융 중심은 다극 체제로 바뀌었다. 런던과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각축을 벌였다. 상황이 정리된 것은 19세기다. 산업혁명 이후 런던이 새로운 금융 중심지로 부상했다. 1801년 런던증권거래소가 설립된 뒤 런던은 금융허브로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들어섰다. 로스차일드와 베어링 가문이 런던 부흥의 선두에 섰다.

여기에다 현대 금융 시스템의 안착도 한몫했다. 영국 금융역사가 글린 데이비스의 『화폐의 역사』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신용창출(Money Creation) 기능이 본격화하면서 런던에서 현대 금융 시스템이 만개했다.

역사의 추는 다시 움직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가 전쟁의 상흔에 신음할 때 금융의 중심은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드디어 미국 뉴욕의 독주가 이어졌다. 런던의 시대가 끝났다는 게 금융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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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적 선택이 런던을 되살렸다. 미국 존 F 케네디 정부가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자본 통제에 나섰다. 소련 권력자들은 미국의 자산동결을 피해 런던에 달러 자금을 예치했다. 유로 달러 시장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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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금융에 화력을 더 불어넣은 사람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다. 1986년 은행과 증권의 겸업을 허용하고 최저수수료제를 폐지하는 등 금융 규제를 완화했다. 자국 금융회사를 보호한 장벽도 제거했다. 런던 금융시장 ‘빅뱅(Big Bang)’이다. 거래 비용이 줄고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외국 금융회사가 몰려들었다. 여기에 ‘3L’로 불리는 영어(Language)와 법제도(Law), 노동시장(Labor)의 우위까지 더해졌다. 이후 30년 금융친화적 환경이 조성되며 런던은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크리스 더필드 더시티(금융 중심지) 전 대표는 “런던의 부활은 장벽 제거 덕분이었다. 금융시장의 자유로운 거래와 경쟁을 막는 장벽이 최소화됐다”고 2007년 말했다.

그런데 브렉시트 때문에 금기시된 장벽이 형성될 조짐이다. EU와의 장벽이다. 시장이 봉쇄되면 금융은 생존이 어려운 법이다. 이 기회를 다른 도시가 놓칠 리 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럽이 금융 중심지 보쌈(유치) 계획을 짜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런던을 대체하고자 매력 발산에 열을 올리는 주요 금융도시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가장 위협적인 도전자는 프랑크푸르트·파리·룩셈부르크·더블린 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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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최대 강점은 유럽중앙은행(ECB) 본부와 독일증권거래소가 위치한 금융 중심지라는 점이다. 저렴한 생활비도 장점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주요 은행의 본사가 있는 파리도 우선 고려 대상 도시다. 파리는 풍부한 문화 인프라와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점이 매력 요인이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유연하지 않은 노동법과 상대적으로 강력한 규제 등이 금융회사의 이전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FT는 “파리의 경우 금융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적대감 등이 이전을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 전 세계 역외 펀드 65% 이상이 설정된 룩셈부르크도 런던 탈출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낮은 법인세로 무장한 아일랜드 더블린도 경쟁자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금융중심지의 부상 가능성을 제시하며 주요 도시의 경쟁력을 인력과 규제, 교통과 통신 인프라 등 7개 항목을 대상으로 평가(60점 만점)했다. 1위는 런던(58점)이었다. 2위는 암스테르담(55점)이 차지했다. 인구의 90%가량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오랜 금융 전통이 있는 데다 교통의 편의성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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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경쟁 도시가 런던만큼의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뉴 런던’을 꿈꾸는 도시가 새로운 금융중심지로 자리 잡을 때까지 5~1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 엑소더스가 유럽 엑소더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FT는 “브렉시트는 골드먼삭스·JP모건체이스 같은 금융회사들이 미국과 아시아로 옮기도록 자극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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