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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추억 남기고…박세리, 굿바이 US 오픈

중앙일보 2016.07.08 00:32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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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여왕 박세리가 미국 무대에 작별을 고했다. 1998년 LPGA투어에 데뷔한 이후 통산 25승을 거둔 박세리는 올해 US여자오픈을 끝으로 더이상 미국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진 하나금융그룹]

‘골프 여왕’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7일 밤(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틴의 코르데바예 골프장에서 개막한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을 끝으로 미국 골프장을 떠난다.

1998년 짜릿한 연장 승부로 우승
국민들 외환위기 아픔 위로해줘
“내 골프 인생 성공이 시작 된 곳”
미국 대회 마지막 무대로 선택

박세리는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공식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가 미국에서 출전하는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JTBC 파운더스컵에서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 계획을 밝혔던 박세리는 이 대회를 마친 뒤 10월 국내에서 열리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끝으로 30년간 분신처럼 여겼던 클럽을 내려놓기로 했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에 미국골프협회(USGA)의 특별 초청을 받았다. 지난 해 어깨 부상 등으로 부진해 이렇다할 성적이 없어 자력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현재 그의 세계랭킹은 343위까지 떨어진 상태다.

박세리가 US여자오픈을 미국에서의 마지막 무대로 삼은 이유는 이 대회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박세리는 1998년 대회에서 연장 끝에 태국계 미국인 제니 추아시리폰(39)을 꺾고 대회 최연소 우승(20세9개월8일) 기록을 세웠다. 4라운드를 마치고도 승부를 내지 못해 다음 날 18홀 연장을 치렀고, 그래도 승부를 내지 못해 2홀을 더 플레이한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연장전에서 나온 박세리의 해저드 맨발 샷은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졌던 한국인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올해 대회 개막일인 7월7일은 박세리가 1998년 대회에서 우승했던 바로 그 날이다. 박세리는 “1997년 이 대회에 첫 출전해 18홀을 마친 뒤 엄마에게 ‘이 대회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US여자오픈 우승은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다. 그 꿈을 바로 이듬 해에 이뤘는데 벌써 18년이 지나 이제 마지막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쁘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다. 만감이 교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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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US여자오픈 당시 워터 해저드에 빠진 공을 쳐내기 위해 양말을 벗고 샷을 했던 박세리. [중앙포토]

박세리는 US여자오픈에 한 달 반 앞선 그해 5월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현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박세리의 이름 석자를 전세계에 알린 대회는 US여자오픈이었다. 박세리는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많은 우승을 했다. 이 대회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순간부터 골프 인생의 큰 성공이 시작됐다”고 털어놓았다. 박세리는 1998년 LPGA투어에 데뷔한 이후 19시즌 동안 메이저 5승을 포함해 통산 25승을 거뒀다. 2007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박세리는 올해 대회 1·2라운드에서 최나연(29·SK텔레콤)·유소연(26·하나금융그룹)과 한 조로 경기한다. 최나연과 유소연은 박세리를 보고 꿈을 키운 대표적인 ‘세리 키즈’이자 박세리의 뒤를 따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선수들이다. 박세리는 “최고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최선의 경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마지막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총 상금 1258만3713달러(약 146억원)를 벌어들여 역대 상금랭킹 8위에 오른 박세리는 일반 LPGA투어 대회에는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올 시즌 이후 다시 필드에 서는 그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박세리는 “사람들은 내가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골퍼로서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우승 뒤 다음 우승을 생각하고, 다른 대회장으로 계속 이동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숙소로 돌아오면 외로움을 느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원했지만 그런 시간을 갖기는 힘들었다. 이제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박세리는 “미래의 골프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모든 선수가 최선을 다해 110%의 노력을 쏟아붓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즐기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들을 어린 선수들에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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