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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브렉시트 덕분에 ‘한숨 돌린’ 한국

중앙일보 2016.07.08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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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논설위원

유럽연합(EU)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위기를 맞았다. 국제경제 일반, 그중에서도 국제금융의 위기다.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글로벌주의·다문화주의의 위기로도 흔히 이해된다. 영국이나 한국 같은 개별 국가도 국제사회도 함께 출렁였다.

EU 위기는 신자유주의 이전에 지역주의의 위기
시간 여유 생긴 한국,‘동북아국가연합’ 대비해야


간과해서는 안 될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브렉시트는 ‘지역주의(regionalism)의 위기’다. 지역주의는 국가 내부에도 있고 국제사회에도 있다. 국가 내부 지역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캐나다 퀘벡,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인 카탈루냐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영호남 지역주의도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충청도 대망론’에는 본격화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호서(湖西) 지역주의’가 잠재됐다.

국제적 차원의 지역주의는 같은 지리적·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번영·안보 같은 공동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EU 같은 제도·기구를 만들어 국가를 넘어선 국제지역 차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지역주의의 바탕에 깔린 것은 ‘나라도 중요하고 국제사회도 중요하지만 일단 우리끼리 뭉치고 보자’는 현실감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우리는 영국인이기 이전에 모두 같은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우리는 세계인이기 이전에 모두 같은 유럽인이다’라는 뭉침의 호소는 ‘우리는 모두 같은 한국인이다. 영국인이다’ 같은 민족주의 슬로건을 양쪽에서 위협한다. 국가는 안팎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사실 국가든 정당이든 모든 정치 단위는 언제 어떻게 해체될지 혹은 도약할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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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나쁜’ 지역주의는 민족국가나 국제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지금까지 EU는 대체적으로 ‘좋은’ 지역주의를 실천했다. 민족주의와 글로벌주의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성취한 EU라는 화합과 통합의 연대를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자신들의 지역주의를 세계로 ‘수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EU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남미국가연합(USAN), 아프리카연합(AU) 등 자신의 예비적인 닮은꼴들과 관계를 활성화했다.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EU는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에서 일방주의나 다자주의 못지않게 중요한 흐름인 ‘국제 지역 간 관계(inter-regional relations)’를 선도한다.

EU는 씨족국가→부족국가→민족국가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서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를 표상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의심의 눈으로 볼 수도 있다. 브렉시트라는 일격을 맞았지만 EU는 어쩌면 로마제국의 현대적인 부활이다. ‘다문화주의 국가의 탈을 쓴 인종국가’를 향해 치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국주의나 인종주의로 타락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하지만 EU라는 정치 실험은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몇 개의 연합들(unions)이 형성하는 범지구적 의사결정 체제는 몇몇 강대국이 좌지우지하는 국제관계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일단 연합 내에서 의견을 수렴한 다음, 다른 연합들과 협상에 나서는 게 이치에 맞다.

자칫 인공지능(AI)과 기후변화가 불러올 위기 때문에 온 지구와 인류가 망하게 생겼다. 어떤 개인·가문이나 국가나 대기업이 아무리 많은 부와 권력을 축적해도 세상 자체가 사라진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국가와 시장을 넘어선 의사결정구조가 절실한 시대다. 언젠가는 세계정부·세계국가가 생길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국제 지역 간 관계’가 솔깃한 대안이다.

브렉시트는 과연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고 어차피 세계는 ‘EU와 그 형제들’로 재구성될 것인가. 그렇다면 한·중·일은 ‘동북아연합’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 다음 단계는 ‘아시아연합’일지 모른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아시아 패러독스’다. 한·중·일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다른 국제지역 못지않지만 정치·안보 갈등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브렉시트는 동북아에 축복이 될 수도 있다. 특히 한국에 좋은 일이다. 동북아 통합을 위해 중국이나 일본이 나서는 것은 현실성이나 모양새가 좋지 않다. ‘아시아의 토인비’라 불리는 키쇼어 마부바니 등 해외 석학들은 한국이 ‘동북아국가연합’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이 이제 국제사회의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질까. 돌고래 또한 결코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은 동북아국가연합 창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브렉시트 덕분에 한국은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속도 조절을 할 수 있게 됐다.

국제정치 대전략(grand strategy)의 논리는 가장 황당한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이런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만약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중국이 이들 지역을 독립시키고 동북아국가연합을 창설한 다음, ‘티베트 인민공화국’ ‘신장 인민공화국’뿐만 아니라 한국·북한·대만·일본에 가입하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 남북한 민족통일보다 동북아국가연합 프로세스가 갑자기 더 빨라지게 되면 남북한은 같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EU라는 테두리에서 ‘통일’한 것처럼 동북아국가연합 차원에서 하나가 된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통일인가.

브렉시트는 우리로 하여금 얼마간 시간을 벌게 해줬다. 하지만 째깍째깍 시간은 간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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