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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가보지 않은 길

중앙일보 2016.07.08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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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정치국제부문 차장

올해 환갑인 여성이 e메일을 보내왔다. 독신이고 직업이 없는데 건강보험료가 20만원 가까이 나와 고통스럽다는 내용이었다. 2억원가량 하는 아파트가 전 재산인데, 이를 담보로 주택연금을 받아 노후를 보내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험료 내느라 엄동설한에도 가스비를 2만~3만원대로 낮추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는 “이대로면 나중에 기초연금을 받아 고스란히 건강보험료를 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1977년 도입된 국내 건보제도는 89년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빨리 정착한 제도지만 뜯어고치자는 여론이 높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기준으로 건보료를 책정하는 법 개정안을 7일 발의했다.

과거에는 고민하지 않아도 됐던 문제들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소득 양극화와 일자리 감소 같은 환경 변화가 원인이다. 이런 사안은 대부분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무상보육 예산 국고 지원 논란에 이어 최근 맞춤형 보육 갈등도 맞벌이 부부가 아닌 가정의 자녀에게까지 종일반 보육료를 지원할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야당은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자거나 대기업의 법인세를 올려 복지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내년 대선을 감안하면 쟁점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다행인 것은 20대 국회가 문을 연 이후 여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는 모임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와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 등 3당 의원들이 참여하는 ‘어젠다 2050’은 2050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예상해 미리 입법할 사항을 연구하자는 모임이다. 김세연 의원은 “한국의 유전자는 남들이 밟는 길을 쫓는 것이었지만 지금부터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유전자가 한국 정치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들이 미래 복지사회의 그림을 그리려고 만든 ‘따뜻한 미래를 위한 정치기획’ 모임의 창립총회에서 김종인 대표는 “복지가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처럼 치부만 해선 미래 전망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치인들은 기존 질서로 보면 낯선 주장을 내놓는다. 모든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하자는 ‘기본소득’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데 인공지능을 필두로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면 근무시간이 짧아지고 소득이 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자는 얘기다. 그럴 경우 현재의 사회보장제도가 유지될 수 없으니 저출산 해소를 위해 지금부터 재정을 집중 투입하고 미래에는 기계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도 검토하자는 담론을 제기한다. 앱으로 시동을 거는 자동차를 선보인 중국의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스마트폰 기능의 80%가 전화 걸기와 관련이 없듯, 스마트 카에도 교통과 관련 없는 기능이 장착될 것이며 모두가 상상력과 창의력의 몫”이라고 말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나선 한국 정치인들에게도 기존의 틀을 벗어던진 상상력을 기대한다.

김성탁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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