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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베저스는 왜 우주산업에 뛰어들었나

중앙일보 2016.07.08 00:13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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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정치는 꿈을 파는 직업이다. 아마존닷컴으로 돈을 벌고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제프 베저스의 현재 비즈니스는 우주관광 사업이다. 그의 우주산업 꿈은 1969년 7월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딘 인류를 보면서 생겼다. 64년생 베저스는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우주로 나아가는 로켓을 꿈꿔 왔다. 인류는 에너지 소비 증가로 머지않아 자원이 고갈될 것이다. 한계를 넘어 대반전을 이루기 위해 우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60년대 달 착륙선을 띄우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아폴로 계획과 존슨 대통령의 우직한 실천이 반세기 뒤 우주산업의 시장을 연 것이다.

나는 당시 서울의 여덟 살 초등학생이었다. 지지직거리던 흑백 TV에서 유영하듯 떠다니는 아폴로11호 우주인을 보긴 했지만 베저스처럼 영감(靈感)은 얻지 못했다. 나와 아무 관계없는 먼 나라의 동화 같은 얘기였다. 나의 어릴 때 추억 목록 1호는 방과후 교실에서 당번이 나눠주던 빵 급식 장면이다. 69년은 우리나라가 꿈을 먹기보다 배를 채우던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이제 한국은 아이들이 무슨 꿈을 꾸면서 자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능력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꿈은 여전히 빈곤하다.

미국 정부는 사흘 전 또 하나의 꿈을 세상에 퍼뜨렸다. 지구에서 8억㎞ 떨어진 목성 궤도에 인류의 안테나를 설치했다. 무인 탐사선 주노(Juno)가 5년 항해 끝에 목성(Jupiter·주피터)을 만난 것이다. 나는 나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주노가 주피터에 근접하면서 17일 동안 찍은 모습을 편집한 2분58초짜리 동영상을 보았다. 숨 막힐 듯한 황홀한 풍경. 밤하늘의 꿈을 현실로 끌어들인 서사다. 신비를 머금은 음악이다. “수천 년간 주피터는 떠돌이 별이었을 뿐…갈릴레오에겐 신의 계시였고…주노엔 근원의 탐색”이라는 문구가 차례로 떠오른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400년 전 자기가 제작한 망원경으로 주피터 주변에서 네 개의 위성을 발견했다. 네 마리 갈매기들이 목성 주위를 우아하게, 수학적 궤도를 그리며 날아 도는 모습이 동영상의 압권이었다.

탐사선 주노는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 여신의 로마식 발음이다. 그가 바람꾼 남편 주피터(제우스)의 위치를 정교하게 찾아 들어간 셈이니 미국인의 이름 붙이기 유머가 재미있다. 미국의 우주탐사 프로젝트는 정부가 먼저 철도 인프라를 깐 뒤 민간이 마을을 만들어 가는 서부 개척 시대를 닮았다. 나사가 달과 화성의 기초 탐사를 마치고 그 기술적 성과와 자원을 상업 비즈니스에 불하하는 식이다. 실제 오바마 정부는 2010년 6월 신우주정책을 발표해 연방정부와 민간 영역의 역할을 명확히 나눴다. 이 정책에 따라 연방정부는 우주 스페이스 셔틀사업을 중단했다. 대신 태양계의 더 깊은 곳, 모험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소행성 탐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베저스, 일론 머스크, 래리 페이지 등 정보통신기술(ICT) 출신 기업인들의 우주관광, 우주정주, 위성서비스 사업이 눈부시게 펼쳐졌다.

우주는 기회다. 특히 통신·케이블 같은 ICT와 빅데이터,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한국엔 특별한 공간이 될 것이다. 우주개발을 중후장대와 무기 경쟁 같은 국가 사업으로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 우주산업 시장의 3분의 2 정도가 위성 기반 비즈니스라고 한다. 우리 정부가 관심 쏟고 있는 발사체보다 몇 십 배 큰 시장이 위성정보 서비스업이다. 구글·애플이 일찌감치 무인자동차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한국의 ICT 기업들은 국내 싸움에 여념이 없다. 새로운 시장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열려 있는데 제 살 파먹기에 바쁘다.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 KT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올망졸망하긴 정부도 마찬가지. 민간의 창의적 도전에 발목을 잡기 일쑤다. 대통령의 창조경제는 스케일을 키워야 한다. 더 큰 꿈을 꾸게 해야 한다. 꿈을 잃어버린 정부의 일이란 그저 매뉴얼을 신앙처럼 붙들고 세력 간 눈치를 보는 것이다. 우주산업의 진정한 자원은 꿈이다. 한국은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라 꿈이 빈약해서 문제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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