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길 속 그 이야기]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낙동정맥 오지 애환 쌓인 협곡 길

중앙일보 2016.07.08 00:06 Week& 4면 지면보기
|  <75>  낙동강 세평 하늘길
 
기사 이미지

승부역에서 출발한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가 양원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철로와 나란히 조성돼 있어 달리는 기차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7월의 추천길 주제는 기차 타고 만나는 걷기여행길이다. week&은 영동선 철길을 따라 걷는 경북 봉화군의 ‘낙동강 세평 하늘길 (12.1㎞)’을 골랐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1코스 낙동비경길(5.6㎞), 2코스 체르마트길(2.2㎞), 3코스 비동·분천 구간(4.3㎞)으로 구성돼 있다. 각 코스의 시작점과 종점이 기차역이다. 1코스는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2코스는 양원역에서 비동승강장까지, 3코스는 비동승강장에서 분천역까지 이어진다. 지난달 23일 낙동강 세평 하늘길을 걸었다. 동네 주민이 손수 만든 간이역도, 굽이치며 흐르는 낙동강도 길에서 모두 만났다.



낙동강의 비경을 품다

경북 봉화군은 대표적인 오지다. 지도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서 태백산(1566m)을 기점으로 갈라진 낙동정맥에 둘러싸인 고장이 봉화군이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고봉들 사이에 낀 산악 분지 지역이다.

봉화에서도 소천면 분천리와 석포면 승부리가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힌다. 두 마을은 옆 마을이지만 생활권이 다르다. 남쪽의 분천리는 봉화군, 북쪽의 승부리는 강원도 태백시 생활권에 속한다. 두 마을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산줄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천리에서는 남서쪽으로 약 18㎞ 떨어진 춘양면이, 승부리에서는 북쪽으로 약 23㎞ 떨어진 태백시 철암동이 읍내로 통한다.
 
기사 이미지
깊은 산 사이로 낙동강이 흐른다.
기사 이미지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낙동강 상류를 따라 조성됐다.

 두 마을을 바로 잇는 교통편이 영동선 기차였다. 기찻길은 터널을 뚫어 산을 통과했지만, 찻길은 산줄기를 한참 에둘러 났기 때문이다. 두 마을을 잇는 기찻길은 12㎞인데 찻길은 44㎞나 된다.

분천리와 승부리에는 일찌감치 기차가 다녔다. 1956년 경북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 영암선이 개통하면서 두 마을에도 기찻길이 놓여졌다. 철암에서 캔 석탄과 춘양에서 벤 금강소나무를 옮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영암선은 63년 영동선으로 통합됐다.

 
기사 이미지
이 기찻길을 따라 ‘낙동강 세평 하늘길’이 놓여 있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영동선 승부역에서 시작해 양원역을 거친 다음 분천역에서 끝난다. 낙동강 물길과 기찻길, 걷기여행길이 나란히 누워 있다.

이 세 길 중에서 걷기여행길이 가장 최근에 생겼다. 2013년 4월 이 지역을 통과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V-트레인)가 개통하면서 걷기여행길도 완성됐다. V-트레인은 철암∼승부∼양원∼분천에 이르는 27.7㎞ 구간을 시속 30㎞로 운행하는 관광열차다. V-트레인은 개통 3개월 만에 누적 이용객 1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분천역이 있는 분천 2리 능호마을에는 원래 식당이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은 분천역 앞에 식당만 10군데 있어요.”
 
기사 이미지
깃발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권현택 분천역 부역장. 선로에 서있는 기차가 V-트레인이다.
기사 이미지
한 쪽 외벽을 스위스풍으로 꾸민 분천역.

권현택(49) 분천역 부역장이 반갑게 맞아주며 말했다. 분천역은 독특하게 생겼다. 건물 한 쪽에 스위스풍의 벽을 세우고 ‘체르마트(Zermatt)’라고 적은 빨간 명패를 달았다. 2013년 5월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하면서 새로 분천역을 단장했다. 두 기차역이 자매결연한 이유가 있다. 해발 4478m의 고봉 마터호른을 두른 산악도시 체르마트는 기차로만 들어갈 수 있다. 분천역도 자동차로 진입하기가 어렵다. 두 두메산골을 세상과 연결하는 창구가 기차역이다. 
 
기사 이미지

달리는 V-트레인에서 바라본 풍경. 낙동강이 내려다 보인다.


오전 10시 20분 분천역에서 출발하는 V-트레인에 몸을 실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손님이 꽤 있었다. 좌석이 40%쯤 찼다. 봉화군 관광개발과 오성대(48) 계장이 “원래 봉화는 청량산이 유명했는데 지금은 V-트레인이 최고로 잘 나간다”고 자랑했다.
 
기사 이미지

승부역 앞에 세워진 비석. 비석에 적힌 글귀에서 ‘낙동강 세평 하늘길’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10시51분 V-트레인이 승부역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에 흰 페인트로 적은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1960년대 승부역 역무원이 적었다는 이 글에서 ‘낙동강 세평 하늘길’이라는 길 이름이 유래했다.
 
기사 이미지
금강소나무숲 사이로 난 길.
기사 이미지
여름 야생화 까치수염.

승부역에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낙동강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옛날에도 이곳에 길이 있었대요. 70년대까지 이 주변에서 금강소나무를 많이 벴거든요. 목재업자가 나무 베는 기계를 옮겼던 흔적을 따라 걷는 겁니다.” 오 계장의 말마따나 길을 따라 금강소나무가 숲을 이뤘다. 수령 30년은 넘어 보이는 거대한 금강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승부역에서 5.6㎞를 걸어 양원역에 도착했다.


목숨을 구하는 기차역
 
기사 이미지

1988년 옛 원곡리 주민이 직접 손으로 지은 양원역 대합실.


양원역은 상상 속 간이역의 모습 그대로였다. 세 평 남짓한 양원역의 외벽은 하얀색이었고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져 있었다. 손으로 적은 ‘양원역 대합실’ 간판에도, 대합실 안의 브라운관 텔레비전에도 정겨운 세월이 담겨 있었다.
 
기사 이미지
양원역에서 맛볼 수 있는 잔치국수.
기사 이미지
양원역에서 파는 잔막걸리와 돼지껍데기. 각각 1000원이다.

 양원역 주변에서 주민 예닐곱 명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남우분(84) 할머니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손님이 가장 많았다. 할머니가 말아준 잔치국수를 먹고 대합실에 들어갔다. 대합실에는 동네 할머니 여섯 명이 쉬고 있었다. 할머니들로부터 옛날 얘기를 들었다.

88년 세워진 양원역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역사(驛舍)다. 양원역이 위치한 곳이 분천리인데, 분천리의 옛 이름이 원곡리였다. 87년 원곡리 이장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가 정말 대통령에게 전달됐던 것인지, 철도청에서 원곡리 주민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수요가 너무 없어 기차역을 지을 수는 없지만 주민이 기차역을 만들면 기차를 세우겠다.” 그때부터 양원리 사람들은 기차역을 만들러 뛰어다녔다.
 
기사 이미지

V-트레인은 양원역에 10분 간 정차한다.


“마을에서 돈을 모아 시멘트를 샀지. 마을에 달랑 하나 있는 경운기로 큰 돌을 옮기고 곡괭이로 땅을 골라 역을 세운 거드래요.”

마을 최고 어르신 방옥분(88) 할머니가 말했다. 역사가 완공된 날 마을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이제 고생은 끝났다는 잔치였다.

원곡리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차역을 바랐을까. 옛날 원곡리 사람은 남쪽에 있는 춘양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 기차가 마을 앞을 지났지만 기차가 서지 않으니 가까운 역까지 걸어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원곡리에서 승부역까지 가려면 기차터널을 통과하고 선로만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지만, 원곡리 사람들은 남쪽의 분천역보다 북쪽의 승부역을 더 자주 이용했다. 원곡리에서 승부역은 5.6㎞, 분천역은 6.5㎞ 거리였다.

사고는 춘양면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터졌다. 원곡리 사람은 기차가 마을 앞을 지날 때 봇짐을 창밖으로 던졌다. 봇짐을 지고 이고 승부역에서 5.6㎞나 되는 길을 걸어서 오는 일이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봇짐을 잘못 던져 참기름 병이 깨지고 계란이 박살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사고도 아니었다.
 
기사 이미지

다리를 건너고 있는 V-트레인.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다리를 건너 강쪽으로 이어진다.


“승부역에서 오는 길에 기차에 치여 많이 죽었제. 터널 걷다가도 죽고 기차공골 걷다가도 죽었제. 강에 놓인 다리 있자녀, 그게 기차공골이여. 기차공골을 걷는데 갑자기 기차가 오는 거여. 피할 데가 없으니까 그냥 선로 바닥에 누워버렸제. 최대한 바닥에 바싹 붙어서 눕는 거여. 내 동상도 그 다리에서 죽었고 성대 어무이도 거서 돌아가셨어.”

노명자(66)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옛날 일을 말했다. 원곡리 사람에게 양원역은 사람 목숨을 구하는 역이었다. 폐쇄될 위기에 처한 양원역을 지킨 것도 동네 사람들이었다. 98년 외환위기 때 양원역이 없어질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동네 할머니들은 이내 조를 짜 기차를 타고 양원역∼춘양역 구간을 왔다갔다 했다. 사람이 많이 타야 역이 안 없어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양원역~비동승강장 2.2㎞ 구간의 이름은 체르마트길이었다. 체르마트길을 걸을 때도 낙동강이 함께했다. 봉화에는 최근 두 달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수위가 많이 내려간 강 수면에 송화가 잔뜩 흩뿌려져 있었다.
 
기사 이미지

양원역에서 비동승강장으로 가는 길에 놓인 다리. 양원역 할머니들이 말한 `기차공골`이다.


비동승강장에 가까워지자 노명자 할머니가 말한 ‘기차공골’ 위로 길이 이어졌다. 선로 바로 옆에 난간을 만들어 1m 폭의 보행 통로를 냈다. 100m 남짓 되는 다리 보행로를 휘적휘적 걸었다. 할머니들 얘기를 듣고 나니 기찻길이 다르게 보였다. 닳고 닳은 선로에 두메산골 주민의 애환과 설움이 쌓여 있었다. 비동승강장에서 4.3㎞ 떨어진 분천역에 도착할 때까지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기사 이미지

● 길 정보=서울시청에서 분천역으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평택제천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차례로 달려야 한다. 3시간 30분이 걸린다. V-트레인은 분천∼양원∼승부∼철암역을 왕복하는 관광열차다. 주중 하루 두 차례, 주말 하루 세 차례 운행한다. 어른 편도 8400원. v-트레인은 안전점검을 이유로 오는 19일까지 운휴한다. V-트레인이 정차하는 기차역 주변에서 마을 주민이 고사리·곤드레 같은 산나물과 국밥·잔치국수 등을 판다. 낙동강 세평 하늘길은 12.1㎞ 길이다. 길이 대체로 평탄해 3시간이면 다 걸을 수 있다. 낙동강 수위가 높아지면 폐쇄되는 구간이 있으니 사전에 길 상태를 확인하는 게 좋다. 봉화군 문화관광과 054-679-6341.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