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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폭력시위로는 세상 못 바꿔…좌파, 변화의 비전 제시해야"

중앙일보 2016.07.07 02:30 종합 23면 지면보기
경희대와 (재)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하는 문명전환강좌 시리즈, ‘세계 지성에게 묻는다-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가 5일 슬라보예 지젝 특강으로 하반기 일정을 시작했다. 강연자들의 단독 인터뷰를 싣는다. 2회는 11일 강연하는 메리 에블린 터커 예일대 교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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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교수는 “좌파들은 다음날의 모델에 대해 제대로 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며 “목적 없는 폭력시위는 좌파들이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기자]

슬라보예 지젝(67) 류블랴나대학 교수는 철학계의 ‘록스타’다. 정신분석에서 정치철학·신학· 영화비평까지 모든 철학 문제를 열광적인 강연으로 풀어낸다. 지젝 교수가 5일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문명전환강좌 ‘세계 지성에게 묻는다’ ① 슬라보예 지젝

700여 명이 참석한 90분 강연에 이어 경희대 이택광 교수 사회로 30분간 열띤 대담·질의응답이 진행됐다. 강연에서 지젝은 “좌파는 변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분노만 남는 폭력시위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며 좌파의 반성을 촉구했다. “100만 명이 한곳에 모이거나 시민들이 ‘두근두근’하면서 거리에 뛰쳐나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후 사람들이 어떠한 변화를 느끼는지가 중요하다”라고도 말했다. 강연 직전에 지젝 교수를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 브렉시트는 잘못된 변화, 진짜 비극
복지국가 강화 주장, 완전히 틀려

 
유럽연합(EU)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심각하게 후퇴할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EU는 믿기 힘든 관성과 침체 속에서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 유럽이라는 특수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경제의 효율적인 부분이 되려고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방향감각 상실과 분노의 분출 속에 유럽인은 변화를 원한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잘못된 변화다. 스탈린은 좌파와 우파의 ‘탈선(deviation)’ 중에 어는 쪽이 나쁜가 하는 질문에 둘 다 ‘더욱 나쁘다(worse)고 답했다. 유럽연합도 나쁘지만 브렉시트는 더 나쁘다. 진짜 비극이다.”
유럽의 이념 지형은 어떻게 될 것인가.
“탈퇴파는 자신들이 이길 줄 몰랐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스캔들이었지 어떤 원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굳이 브렉시트의 이념을 따진다면 인종주의적인 민족주의이지만, 심지어 일부 좌파까지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그들은 영국이 자율성을 다시 확보하면 사회민주주의로 회귀해 복지국가를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친노동 사회보장 정책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프래킹’ 공법으로 생산한 석유를 금지하자는 EU정책에 반대한 것도 영국이다. 브렉시트는 결코 좌파에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브렉시트로 영국은 더욱 글로벌 자본에 개방적이 될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천하에 거대한 무질서가 있다면 상황이 아주 좋은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브렉시트가 실패하면 카오스 속에서 ‘자유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라는 이상을 복원하는 새로운 좌파가 부상할 수 있다. 나는 완전한 비관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비관론에 가깝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의 선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샌더스가 원하는 것은 50년전 유럽에서라면 정상적이고 온건하며 표준적인 사회민주주의다. 오늘 날 같은 주장을 하면 미친 급진 좌파 취급을 당한다. 좋은 점은 샌더스가 어떤 새로운 프로세스를 개막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급진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이면(裏面)이기도 하다. 미국의 양당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정치에도 예절과 품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트럼프는 공적 공간의 수사(修辭)에 상스러움을 도입했다. 우리는 매일매일 정치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 인간의 뇌 개입하고 감정 통제하는
인공지능과 유전자공학 결합 우려

 
인류는 인공지능과 기후변화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인공지능·기후변화와 더불어 유전자공학과 지적재산권 문제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특히 유전자공학과 인공지능의 결합이 우려된다. 미국·유럽의 군부는 뇌 활동에 개입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핵만 있으면 된다는 북한은 멍청한 것이다. 이런 도전 때문에 국가보다 더 강한 조직과 권력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한계를 드러낸 시장과 자본주의에 생존을 맡길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할만한 거대이론이 나올 것인가.
“대체보다는 완전히 변모한 마르크스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은 19세기 산업자본주의가 배경이다. 지금은 지식이 너무나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바랐던 것에 충실하려면, 모든 것을 완전히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최악의 보수주의자들은 늙은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아직도 노동자 운동을 기다린다.”
‘프로이트(Freud)는 사기(Fraud)’라고 한다. 정신분석은 오늘날에도 타당성이 있나.
“사기 정도가 아니라 흉악한 사기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나 라캉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과거처럼 실증주의적, 과학적인 의미에서는 아니더라도 유용성이 있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은 일에 중독돼 있고 인생을 즐기려고 하지만 자살률은 세계 최고다. 정신분석으로 이러한 패러독스를 설명해야 한다.”

| 행복해지려면 행복 바라지 말아야
진짜 좋은 것들은 저절로 얻게 돼

 
한국 젊은이들에게 전할 말은.
“행복해지는 유일한 길은 행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행복하게 된다. 진짜 좋은 것들은 저절로 얻게 된다.”
비난을 받는 일도 있을텐데.
“우파는 내가 숨어 있는 공산주의자·전체주의자라고 한다. 나는 이주민·난민 문제나 문화충돌에 대해 보다 회의적이기 때문에 좌파는 나보고 인종주의자라고 한다. 사르트르는 ‘양극단으로부터 공격받으면 당신이 옳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라이벌·경쟁자가 있는지.
“항상 논쟁하는 좋은 친구는 알랭 바디우다. 우리는 굉장히 의견이 가깝다. 하지만 가까울수록 차이점이 눈에 띄게 된다. 독일 철학자인 페터 슬로터다이크도 경쟁자다. 유럽에서 우리 철학자들은 최후의 스탈린주의자라고도 불린다. 철학계를 이해하려면 분파 투쟁, 숙청이 난무한 북한을 보면 된다.”

글=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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